물가인정·완전고용 이중책무 가진 Fed
트럼프 금리 인하 압박에
파월 "경제 좋아"…금리 인하에 신중
경기 방어냐.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억제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관세 딜레마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으로 통화정책의 초점을 경기부양 쪽으로 선회해야 할지, 물가 안정에 둬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상호관세 발표 이후 올해 기준금리 인하 횟수를 기존 3회가 아닌 5회로 늘려 전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세계 시장에 충격을 줬고, Fed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할지, 새로운 인플레이션 폭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높게 유지할지가 바로 그것"이라고 짚었다.
시장에선 Fed가 올해 금리 인하 횟수를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에서 올해 말 기준금리가 3.25~3.5%로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34.3%를 차지했다. 3.0~3.25%에 이를 것이란 견해도 일주일 전 9.8%에서 31.9%로 급격히 늘어났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연 4.25~4.5%로, 0.25%포인트 인하를 기준으로 하면 적어도 올해 4~5회는 금리를 낮출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격을 퍼붓기 전에 시장이 전망한 금리 인하 횟수는 3회였다. 앞서 Fed는 올해 열린 두 차례(1·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모두 동결했다.
경기 침체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2개월 안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35%에서 45%로 상향 조정했으며 글로벌 투자은행(IB) 영국 바클레이스도 9일까지 상호관세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경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경기 침체 공포에 방아쇠를 당긴 장본인인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지금이 금리를 인하하기에 완벽한 시기"라며 "제롬 파월 Fed 의장은 항상 늦은 편이지만 지금 그 이미지를 빠르게 바꿀 수 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와 경기 침체 가능성에도 Fed는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는 한편 경기침체에 대한 명확한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 모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지난 4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콘퍼런스 연설에서 현재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해 "여전히 좋은 상태"라고 평가하며 금리 인하 여부는 더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의 노동부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3월 비농업 고용이 예상을 크게 웃돈 22만8000명 증가해 3월까지 양호한 노동 시장 상황이 이어졌다. 물론 3월 고용지표엔 상호관세 효과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세 후폭풍이 모두 반영되진 않았다.
이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란 이중 책무를 가진 Fed의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가격을 안정시키고 건강한 일자리 시장을 유지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Fed에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제학자들은 Fed가 결국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감소 중 어느 위협이 더 시급한지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Fed가 신중 모드를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관세정책 탓이다. 파월 의장은 "관세가 부과될 품목, 관세 수준, 기간, 무역 파트너의 보복 범위 등 세부 사항에 대한 확실성이 더 커질 때까지 관세 인상의 경제적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지금 뜨는 뉴스
일각에서는 과거 Fed의 결정 방식에 비춰볼 때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동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애덤 포즌 피터슨 국제연구소(PIIE) 소장은 "Fed가 관세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정 계획(세금 대폭 인하)의 영향을 미리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Fed 부의장 출신인 리처드 클라리다 핌코(PIMCO) 경제고문은 "Fed가 향후 경제 둔화 예측이나 모델 때문에 금리를 인하할 의향이 없을 것"이라며 "그들은 실제로 구체적인 증거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