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광역급행철도, GTX-A) 덕분에 한 잔 더 마시고 갑니다."
저녁 9시를 넘기지 못하고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에 있는 집으로 들어갈 채비를 하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최근 귀가 시간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더니 급기야 2차까지 가자고 나섰다. 그는 "GTX가 개통하면서 편도 25분이면 집에 갈 수 있게 됐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출근길은 서울을 향한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광역급행버스(M7111)를 타고 서울역을 찾아 들어가면 1시간30분이 걸린다. 왕복으로는 3시간이다. 하루 3시간씩 20일을 직장에 간다고 치면 1년 중 한 달은 버스에 갇힌 것이 된다. 운정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출발해도 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집과 역간 거리가 있으니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스마트폰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정도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에게 "신데렐라"라는 소리를 들어도, 저녁 9시면 회식 자리에서 나온다. "집에 뭐 있어? 한 잔 더 하자"는 동료들의 부추김은 뿌리치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동료들의 권유대로 한두 시간 더 마시다 보면 그의 하루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난다. 다음 날 어김없이 시작되는 출근 여행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동료들이 이해 못 한다고 아쉬운 것은 아니다. 가족들의 ‘더 넓고 깨끗한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그를 파주로 이끌었고, 그들은 바람처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본인만 고생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GTX는 이런 그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가족들은 서울 사는 사람들처럼 그와 저녁을 먹기 위해 식사 시간을 늦추지 않아도 됐다. 그 역시 퇴근 시간 같이 저녁을 할 동료를 찾지 않아도 됐다. 특히 ‘서울로 이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그는 "GTX로 인해 이제 곧 경기도는 서울처럼 노른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수도권 외곽에 사는 삼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경기도는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같아"라는 표현이 나와 화제가 됐다.
그의 이웃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듯하다. 운정∼서울역 구간은 개통 3개월 만에 360만명이 이용했다. 일평균 이용객은 3월 말 현재 4만5600명(예측 대비 91.1%) 정도다. 1년 전 개통한 수서~동탄 노선 이용객이 409만명(일평균 1만6171명, 예측 대비 75.1%)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경기도 북부 주민들의 교통 갈증이 더욱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정~서울역과 수서~동탄 구간이 연결되면 그의 삶은 더욱 달라진다. 2027년 삼성역을 무정차 통과하게 되면 동탄까지 43분이면 닿는다. 2028년 삼성역까지 개통하면 강남까지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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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경기도, 인천광역시 주민들은 GTX 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성대한 착공식을 열고 B노선(인천 송도~경기 남양주)과 C노선(경기 양주~수원)을 각각 2030년, 2028년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착공식 후 1년이 지나도록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공사비 상승, 자금조달 문제로 민자 구간의 사업 추진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부가 공사비를 현실화할 수 있는 안을 마련해야 착공의 실마리가 잡힌다. 주민들의 염원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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