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테스트 거래 등 준비 문제"
글로벌 유동성 유입 효과도 지연
계엄·탄핵 여파 관측에 정부 "아니다"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연내 편입이 무산됐다. 미국발(發) 관세 충격에 대통령 탄핵 이후로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심해지며 달러당 원화 가격이 급락하는 가운데 WGBI 편입 시점 지연이 금융·외환시장에 새로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이날 새벽 한국의 WGBI 편입을 확정했다. 다만 한국 국채의 지수 편입 시점은 당초 발표한 올 11월에서 내년 4월로 변경했다. 편입 시작 시점이 지연되면서 편입 비중 확대 방식도 당초 '분기별 단계적 확대'에서 '월별 단계적 확대'로 변경했다. 계획된 시점에 편입을 마치기 위해 분기가 아닌 월별로 편입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WGBI는 블룸버그·바클레이스 글로벌 종합지수, JP모건 신흥국 국채지수와 함께 글로벌 3대 채권지수로 꼽힌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등 총 25개국 국채로 구성된 채권 지수로, 한국 국채는 2022년 9월 WGBI 편입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에 이름을 올린 후 지난해 10월 하반기 정례 시장 분류 보고서에서 편입에 성공한 바 있다. 한국의 예상 지수 편입 비중은 2.05%(3월 기준)로, 미국(41.9%), 중국(10.0%), 일본(9.7%), 프랑스(6.4%), 이탈리아(5.9%), 독일(5.0%), 영국(4.7%), 스페인(3.9%)에 이어 9번째 규모다.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지수 편입 지연에 대해 채권 시장 큰손인 일본 투자자들의 투자 환경 개선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측은 "투자자들에게 투자 실행을 위한 내부 절차를 마무리하고 테스트 거래를 위한 준비시간을 부여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투자자 준비 상황 등을 고려해 (편입 시점은) 유연하게 결정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편입 시점이 늦춰지면서 글로벌 유동성 유입 효과도 지연되게 됐다.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외환시장 안정화와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이자 비용 절감 효과도 당장 누리기 힘들게 됐다는 게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분석이다. WGBI에 따라 투자의사 결정을 내리는 글로벌 자금은 2조5000억달러다. 한국의 비중(2.22%)을 감안하면 이번 정식 편입으로 최소 555억달러(약 82조원)의 자금이 올해부터 국내로 유입될 것이라는 게 당초 정부 예측이었다. 이는 정부 1년 치 국고채 순 발행액과 유사한 규모다.
금융투자 업계에선 러셀의 편입 시점 지연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최종 편입을 위한 1, 2차 관문을 모두 통과한 상황에서 편입 시점이 지연된 사례가 흔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수 편입 과정에서 시점이 조정된 경우는 중국이 유일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편입 지연 결정이 한국의 대내외 악재가 확대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모든 교역국이 겪는 공통된 이슈라는 점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파면이라는 넉 달간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드러난 정치적 취약성과 이에 따른 외환 시장 변동성 확대 등 경제 여파가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운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편입 시점이 지연된 것이 투자 심리 악화로 원화 가격 불안심리를 키울 수 있다"며 "가뜩이나 외국인 채권 순매수 강도가 약화한 상황에서 신규 악재로 인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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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기재부 측은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국채 시장 자체의 문제였다면 편입 자체가 불발됐을 것"이라며 "편입 완료 시점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시작 시점을 미뤘다는 점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편입 지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0%"라고 말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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