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구속 연장' 계산 명확한 기준 없어…'시간 기준' 주장한 尹 측 의견 받아들여
재판부 "구속 만료 시점은 1월26일 오전 9시7분"
검찰, 구속 만료 후 9시간 이상 지나서 기소한 셈
재판부, 공수처-검찰 간 협의 과정 '명확성·적법성 의문'부터 해소해야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한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작동한 결과다. 첨예한 쟁점을 해소할 명확한 근거가 없고, 추가 해석이 필요한 경우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범위와 공수처-검찰 간 협조 절차 등에 대해서도 법령과 판례가 없는 만큼, 의문의 여지를 해소해서 상급심 파기 사유는 물론 향후 재심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하게 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구속취소 청구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윤 대통령 측이 지난달 4일 법원에 구속을 취소해달라고 청구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또한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금된 지 51일, 구속기소 된 지 40일 만이다.
재판부 "尹 구속 만료 시점은 1월26일 오전 9시7분"…검찰 9시간 지나서야 기소한 셈
재판부는 크게 구속만료 시점이 지나 검찰이 기소했는지 여부와 공수처-검찰로 이어지는 수사 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했다. 우선 구속만료 시점과 관련해서는 윤 대통령 측이 주장한 맥락과 같이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실제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구속기간이 만료된 시점에서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 됐다고 봤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기간을 어떻게 산정하고, 사정 변경이 있는 경우 기간을 어떻게 조정하는지를 큰 틀에서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에 따라 법령의 해석을 구속된 피의자에게 불리하지 않은 방향으로 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검찰이 할 수 있는 구속기간은 10일이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 한 차례 10일 이내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수사관계 서류 등이 법원에 접수된 시기는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아 기간이 연장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공수처와 검찰은 관례에 따라 늘어나는 기간을 '일' 단위로 계산했고, 체포적부심사 역시 영장실질심사와 동일하게 구속기간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1월15일 오전 10시33분에 체포된 윤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 시기를 1월27일로 봤다. 당초 구속 만료 기한인 1월 24일에 3일을 더해 나온 날짜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은 구속 기간 연장 효과를 엄격하게 해석해 기소 전에 이미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주장했다. '일'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윤 대통령 구속 만료 시점은 1월 26일 오전 9시 7분. 심우정 검찰총장이 윤 대통령 기소와 관련해 검사장 회의를 개최하기도 전에 만료된 것이다. 검찰은 검사장 회의를 거쳐 1월26일 오후 6시52분에서야 윤 대통령을 기소했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신체의 자유, 불구속 수사의 원칙 등에 비춰 볼 때 수사관계 서류 등이 법원에 있었던 시간만큼만 구속기간에 불산입하도록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실제 관련 서류가 언제 법원에 서류가 접수되고 반환되느냐에 따라 늘어나는 구속기간이 달라지는 등의 불합리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재판부는 "기술의 발달로 정확한 서류의 접수와 반환 시간 확인이 가능하고 이를 관리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다"면서 "수사기관의 구속 피의자 관리나 구속 수사에 많은 부담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공수처-검찰 간 협의 절차 명확성·적법성 의문…'해소가 먼저'
공수처의 수사범위와 공수처-검찰 간 협조 절차의 모호성을 두고도 피의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관련한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에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향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적시했다.
재판부는 구속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가 제기된 것이라 하더라도 구속취소의 사유가 인정된다면서 공수처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일 만한 상당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는 공수처법에 따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관련 범죄여서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수사처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수사 과정에서 내란죄를 인지하였다고 볼만한 증거나 자료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부는 '공수처 수사 범위에 내란죄가 포함돼 있지 않고 공수처와 검찰은 서로 독립된 수사기관인데 아무런 법률상 근거 없이 형소법이 정한 구속기간을 서로 협의해 나눠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신병 인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측의 주장을 배제할 만한 법령과 대법원의 판단이 없는 만큼 우선 수사과정의 적법성과 의문을 해소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근 '10.26 김재규 사건 재심 결정'을 예로 들면서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구속 취소 결정을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러한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에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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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윤 대통령의 석방이 즉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기소청인 서울중앙지검에서 7일 내 즉시항고를 할 수 있고, 즉시항고를 포기하거나 기간 내 항고를 하지 않을 때 석방된다"며 "해당 결정에 대한 검사의 즉시항고 제도는 위헌 결정이 났기 때문에 즉시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지휘를 함이 마땅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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