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공들인 동남아 인도 등에는 부정적
국가AI컴퓨팅 센터·국가슈퍼컴 용 GPU 확보에 '청신호'
트럼프 정부 규제 유지 여부는 미지수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인공지능(AI) 칩 수출규제가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 숨통을 틔워주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GPU 공급사인 엔비디아가 최근 공을 들여온 동남아, 인도 등에 대한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해당 물량을 한국으로 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발표한 AI 반도체 수출 규제는 전 세계 국가를 세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중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는 무제한 수출을 허용한다. 중국·러시아·북한을 제외한 동남아, 중동 등은 향후 연간 약 5만개로 구매가 제한된다. 이번 조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동남아 국가들이 확보한 GPU가 중국을 위해 사용되거나 밀수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시선이다. 동남아를 통해 중국으로 GPU가 밀수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WS,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도 수출 제한 국가로의 GPU 도입에 제한이 생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 국가와 인도, 중동 등을 연이어 방문하며 각국 정부의 GPU 구입 요청을 받았고 지원을 약속해 왔지만, 차질이 예상된다. 싱가포르는 이미 대규모로 GPU를 구매하고 국가 차원의 AI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전 세계적인 GPU 수급난 속에서 AI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을 겪은 한국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과 기업들의 AI 서비스 개발에 제약받아 왔다. GPU 가격 급등으로 인한 예산 부족으로 국가슈퍼컴6호기 도입이 수년째 멈춰 서 있는 게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최근 한국이 보유한 엔비디아 ‘H100’ GPU가 2000장 정도에 그치고 있다며 조속히 구매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번 조치로 현재 추진 중인 국가 AI 슈퍼컴퓨팅 센터 설립과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에는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다. 과기정통부는 13일 5개 부처 합동 업무보고에서 1분기 중으로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공고를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AI컴퓨팅센터는 2040년까지 약 4조원의 정부예산이 투입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추진 중인 슈퍼컴퓨터 6호기 사업도 가속도를 낼 수 있다.
다만 엔비디아의 신형 GPU 블랙웰 공급은 변수다. 미 정보기술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이날 마이크로소프트, AWS 등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블랙웰 시스템을 구성하는 랙(Rack)의 발열 이슈로 현 주력 제품인 H100 구매를 확대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블랙웰로 주요 기업의 수요가 이전하는 것을 노려 H100 구매를 확대하려던 우리 정부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미 정부의 규제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선 규제받는 국가도 5만장의 H100을 구입할 수 있다면 적은 물량이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 정도 물량이면 상당한 성능의 AI 서비스 구현에는 문제가 없다. 우리 국가슈퍼컴6호기에 투입되는 GPU도 8800여장에 그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취임이 임박한 시점에 이번 미 정부의 정책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미 엔비디아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트럼프 당선자 측의 대응을 요청하고 나섰다. 뉴욕포스트는 이에 대해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대변인과 'AI 차르'로 지명된 데이비드 색스 측에 논평을 요청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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