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강화된 반간첩법 주의 필요
비자 없더라도 도착 후 '주숙등기' 해야
중국이 한시적으로 한국을 비자 면제 국가에 포함시키면서 한중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일, 한국을 포함한 9개국에 대해 한시적 비자 면제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이 우리나라에 비자를 면제한 것은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국의 비자 면제 국가는 모두 29개국으로 늘었다.
8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한국인은 비즈니스, 관광, 친지 방문, 환승 목적 등으로 중국을 방문할 경우 최대 15일간 무비자 체류 가능하다. 한국을 비롯해 슬로바키아,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안도라,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등 9개국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한 대상국으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다만 무비자 입국이라고 해서 모든 절차가 간소화된 것은 아니다. 한국대사관이 발표한 유의사항에 따르면, 입국 목적과 체류 기간에 대한 명확한 소명이 필요하며, 귀국 항공권 또는 제3국행 항공권, 숙소 예약 정보, 현지 지인 연락처 등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특히 '주숙 등기'라는 임시 거주 등록 제도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중국 도착 후 24시간 이내에 이 등록을 완료해야 하는데, 호텔 투숙객의 경우 호텔 측에서 자동으로 처리해주지만, 개인 주택이나 친지 집에 머무는 경우에는 반드시 관할 파출소에 등록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강화된 반간첩법이다. 2023년 7월부터 시행된 반간첩법 개정안은 올해 7월부터 더욱 구체화된 집행 절차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 국가안보 관련 자료의 검색이나 촬영, 군사시설과 주요 국가기관 인근 지역 촬영, 시위 현장 촬영 및 참여, 허가받지 않은 종교 포교 활동 등이 모두 규제 대상이 된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이 법이 중국 당국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중국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던 삼성전자 근무 경력의 한국인이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연행돼 올해 5월 구속된 사례가 있다.
무비자 결정의 의미와 전망
중국이 한국을 비자 면제 국가에 포함시킨 것은 복합적인 전략적 계산이 깔려있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은 5%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해 관광산업 활성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관광업계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구매력 있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필수적이며, 한국은 지리적 근접성과 높은 구매력을 갖춘 최적의 관광객 송출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중국을 압박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당선인이 집권 2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특히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과 맞물려 이번 조치의 의미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비자 면제 발표 이후 여행업계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요 여행사인 모두투어는 발표 이틀 만에 중국행 예약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은 중국 5개 노선에 대해 편도 6만원대 전후의 특가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으며, 대한항공은 12월부터 인천-푸저우 노선을 신규 취항하고 부산-칭다오 노선도 4년 만에 재개하기로 했다.
한국의 여권 파워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 여권으로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한 국가는 191개로, 세계 공동 3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인 싱가포르(195개국)와 2위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192개국)을 바짝 뒤쫓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중국은 한국 게임의 판호 발급 재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이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경색됐던 양국 관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번 비자면제 조치가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향후 중국이 한국에 대한 상호 비자 면제를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인의 한국 입국 시에는 여전히 비자가 필요한 상황으로, 불법체류자 증가 우려 등으로 인해 한국의 중국인 무비자 입국 허용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양국 관계 개선의 긍정적 신호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반간첩법 등 잠재적 리스크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백강녕 디지털콘텐츠매니징에디터 young100@asiae.co.kr
마예나 기자 sw93yen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