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8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금융권의 수신금리가 꺾이기 시작한 양상이다. 일부 금융회사가 선제적인 수신금리 인하를 선택한 가운데, 은행권은 대출규제 강화로 벌어진 예대금리차와 차주의 부담 증가 속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SBI저축은행은 지난 16일 일명 '파킹통장'이라 불리는 수시입출금식 통장(사이다입출금통장)의 금리를 잔액 1억원 이하 기준 기존 3.2%에서 3.0%로 0.2%포인트 인하했다. 지난 8월 초 파킹통장 금리를 인상한 지 약 2개월 만이다.

이런 금리인하는 비단 이 저축은행만의 일은 아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저축은행권의 전날 기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69%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전인 지난 10일(3.70%) 대비 소폭(0.01%) 하락했다. 두드러지진 않지만, 일부를 중심으로 수신금리 인하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에서도 수신금리 인하에 나선 사례가 나왔다. SC제일은행은 전날 주요 예금상품의 금리를 0.1%포인트 인하했다. SC제일은행의 대표상품인 'e그린세이브예금'을 예로들면 12개월 만기일시지급식으로 가입할 경우 이율은 연 3.15%로 전일 대비 0.1%포인트 줄어든다.
5대 시중은행(KB ·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경우 아직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상품 금리는 최고 연 3.35~3.42% 수준을 유지 중이다. 시장금리 하락에 따라 지난 수 개월 간 금리를 인하해 온 데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은행권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건 축소를 거듭해 온 예대금리차가 최근 다시 벌어지고 있어서다. 전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을 앞두고 가계대출 수요가 급증하면서 당국과 은행은 각종 대출규제와 함께 우대금리 폐지, 가산금리 인상으로 대출수요를 잠재우고 있다.
실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8월 5대 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0.57%로 전월(0.43%) 대비 0.14%포인트 확대됐다. 최근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6%대 중반까지 상승한 상황에서, 수신금리를 인하할 경우 예대금리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 내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불만 섞인 여론도 은행권을 멈칫하게 하는 요소다.
다만 수신금리를 유지하면서 차주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은행권에게 또 다른 고민 지점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준거로 활용되는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는 지난 9월 기준 되레 0.04%포인트 상승한 3.40%를 기록하기도 했다. 통상 코픽스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의 금리 변동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당국서도 가계대출과 관련, 금리 인하 효과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지난 11일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기존 가계대출에 대해서도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반영될 수 있도록 예대금리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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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수신금리를 내리면 예금자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차주 입장에선 코픽스 금리가 낮아져 부담이 다소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면서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고 (수신금리 방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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