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BORING!!!)"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첫 텔레비전 인터뷰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놓은 평가다. 그렇다면 주요 외신들은 이번 인터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진보매체인 뉴욕타임스(NYT)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면서도 "정치적 문제를 일으킬 만한 말은 없었다"고 진단했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트럼프는 해리스에겐 '지겨운' 것은 좋은 편(good)이란 사실을 간과했다"며 "최근 상승세를 꺾을만한 부분은 없었다"고 무난한 평점을 줬다. LA타임스는 "대선 레이스에서 화제가 될 만한 것은 (해리스와 트럼프가 토론하는) 9월10일에야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선 주자로서 첫 인터뷰..."중도층, 반트럼프 보수층 표 노렸다"
29일(현지시간) 밤 CNN방송을 통해 방영된 인터뷰는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 후 39일 만에 민주당 대선주자로서 참석한 첫 언론 인터뷰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그간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이 기자회견이나 심층 인터뷰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대선 후보로서 검증을 피하고 있다고 비난해왔었다. 이 가운데 해리스 부통령은 러닝메이트(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와 함께 친민주당 성향의 CNN을 첫 인터뷰 상대로 결정하며 쉬운 길을 택했다.
진행자 발언을 제외하고 약 27분간 진행된 이날 CNN 인터뷰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성과를 강조하는 한편, 자신의 진보적 가치관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집권 시 공화당 구성원을 내각에 기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지난주 후보 수락연설에서 선언했던 것과 같은 '통합' 기조를 재확인했다.
NYT는 해리스 부통령이 경제, 가자지구 문제, 국경정책 등 이날 다루어진 정책 현안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기조를 옹호했다"면서도 "중도 성향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는 공화당의 표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목했다. 특히 공화당원을 내각에 기용하겠다는 선언은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겠다는 약속이자, 해리스 행정부의 정책에 보수의 목소리가 일부 반영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반(反)트럼프 기조가 뚜렷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지지자들 등에게 설득력 있는 호소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지난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도 반트럼프 기조의 일부 공화당 연사들이 여럿 등장한 바 있다.
더힐은 "해리스가 중도층 유권자, 공화당에 가깝지만 트럼프를 우려하는 유권자들에게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번 대선은 7개 경합주에서 아직 마음을 내리지 못한 소수 유권자에 따라 결정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AP통신은 "이날 인터뷰는 주로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해리스는 그간 공화당이 자신을 향해 극단적이라고 비판해온 이슈에 대해 보다 온건적으로 보이고자 했다"고 진단했다.
인종, 성별 부각안한 해리스...트럼프 대응 대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주요 외신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인종, 성별에 대해 부각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시했다. NYT, 가디언을 비롯한 다수 언론이 이번 인터뷰의 하이라이트로 꼽은 장면에는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정체성 비난에 대해 "똑같이 낡고, 지친 전략이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고 짧은 답변으로 무시한 부분이 포함됐다. 이에 진행자는 '그게 다냐'고 물었고, 해리스 부통령은 '그게 다다'라고 답했다. 또한 해리스 부통령은 당선 시 여성이자 흑인 여성 최초로 대통령이 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도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미국인을 위해 대통령직을 맡을 최적임자라고 생각하기에 출마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가디언은 "인터뷰에서 확인한 주요 내용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라며 "해리스는 이 순간이 특히 젊은 세대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동시에 인종 차이를 넘어선 기회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워싱턴발 분석기사에서도 "해리스는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 역사에 대해 폭언을 퍼부을 수 있었다"면서도 "대신 그녀는 현명하게 요점을 전했다"고 짚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는 9월 대선 토론에 앞서 해리스 부통령의 전략에 대한 힌트로도 읽힌다. 트럼프식 공격에 답변하기 대신, 낙관적이고 미래지향적 의제를 제시하는 데 집중할 것이란 관측이다.
해리스 부통령의 이러한 전략은 2016년 대선 전체 득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280만표 이상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 밀려 패배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기득권 정치에 대한 반감이 표심에 여파를 미쳤다는 점을 고려해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검사 출신 정치인 해리스'를 더 앞세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과거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인종과 관련한 언급을 최소화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강렬한 메시지 못남겨...부통령 후보 월즈는 앉아서 웃기만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미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나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NYT는 "대본없이는 횡설수설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유세 연설처럼 단순하고 선언적이지는 않았다"고 꼬집었다. 큰 실수는 없었지만, 정확한 진단이나 날카로운 해결책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전체적인 인터뷰 분위기 역시 친민주당 성향이 짙은 CNN이 압박성 질문이나 추궁을 쏟아내기보단 오히려 친절한 해명, 설명 기회를 주는 분위기로 전개됐다.
가디언은 "해리스 행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어떻게 다를 지 알 수 없다"고 이날 인터뷰를 요약했다. 정치컨설턴트 프랭크 런치는 첫 질문으로 나온, 취임 첫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해리스 부통령의 답변(기회 경제)이 "너무 모호해서 사실상 가치가 없었다"며 "시작이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LA타임스는 "그나마 시청자들에게 기억에 남을 순간은 해리스와 월즈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라며 재선 도전을 포기한 바이든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에게 전화했을 때, 월즈 주지사가 민주당 전당대회 무대에 등장하자 아들 거스가 일어나 소리쳤을 때에 대한 두 사람의 발언을 소개했다.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가족들과 팬케이크를 먹으며 여유로운 일요일을 보내고 있던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을 듣고 "진심이냐"라고 물었다. 그는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것이었다"고도 말했다.
LA타임스는 "인터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면서 "이날 나온 발언들이 치열한 대선 레이스의 흐름을 바꿀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총평을 내놨다. 더힐 역시 "이날 CNN 인터뷰가 정치적 설득의 기술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요약했다. 다만 이 매체는 "해리스와 월즈는 어쨌든 주요 매체와 인터뷰를 하겠다는 기준은 충족했다"면서 "상승세를 꺾을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간단한 임무를 완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한 월즈 주지사의 경우 더욱 존재감이 약했다. AP통신은 "월즈에게는 단 4개의 질문만 던져졌다. 그 중 하나는 후속 질문이었다"면서 "부통령 후보인 월즈는 해리스의 답변에 개입하거나 추가 내용을 덧붙이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NYT는 "월즈는 흥분한 치어리더역할을 맡았다. 대부분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인터뷰 초반에 그는 무려 8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서 "진행자는 답변이 나와야 할 사람이 해리스임을 알고 있었고, 월즈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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