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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풍요 뒤 굶주림, 노동보다 일확천금 '미국의 민낯'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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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불안 23%·실업률 21%·제조업 11%
옛 소련인이 본 미국…그리고 몰락의 징후
노동 가치는 무시되고 허황된 욕망만 커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는 식량 불안을 느낀 가구 비율이 22.7%, 구직 포기자와 파트타임 근로자를 포함한 U-6 실업률이 21.2%에 달하는 나라.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1%에 불과하고 2000년 이후 제조업 일자리가 500만개 사라진 나라. 19~33세 젊은이들이 가장 꺼리는 직업이 제조업인 나라.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에서 묘사된 미국의 현재 모습이다. 글쓴이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는 옛 소련인이다. 1963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태어나 1990년까지 옛 소련 해안경비대 장교로 근무한 러시아 군사 문제 전문가이자 해군 전문가다. 책의 원래 제목은 ‘분열: 다가오는 미국 붕괴의 징후들(Disintegration: Indicators of the Coming American Collapse)’이며 미국에서 2021년 출간됐다.


글쓴이는 20대 후반 옛 소련의 붕괴를 목도했다.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감이 절정에 달했던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했다. 20년 이상 미국 사회에서 살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미국이라는 제국이 옛 소련보다 더 극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옛 소련처럼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자멸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 책 어때]풍요 뒤 굶주림, 노동보다 일확천금 '미국의 민낯'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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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한 국가지만 역설적이게도 굶주림에 대한 공포도 상당한 나라다. 앞서 언급한 식량 불안 가구 비율 22.7%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결과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조사에서도 식량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가구 비율이 11.1%였다.


1960년대 GDP의 25%를 차지한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미국은 금융자본주의 국가가 됐다. 금융(Finance), 보험(Insurance), 부동산(Real Estate) 부문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이른바 파이어(Fire) 경제 구조. 이는 금융 기생충이 숙주를 죽이는 형태라고 글쓴이는 지적한다. 근면성실한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일확천금의 허황된 욕망이 독버섯처럼 커졌다. 나라를 이끈 엘리트들은 무지하고 무능했다. 글쓴이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2000년 미국은 중국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하는 ‘중국무역법안(China Trade Bill)’을 통과시켰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의 지속적인 번영, 중국의 개혁, 세계 평화를 향한 역사적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연설했다. 하지만 글쓴이는 당시 연설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에 관한 가장 지각 없고 무식한 발언이었다고 직격한다. 애초 중국무역법안은 미국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확보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 제조업이 쇠퇴하는 계기가 됐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클린턴 정부의 도움 덕분이었다. 일련의 조치는 궁극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경쟁자로 부상하도록 만들었다고 글쓴이는 지적한다.


미국 내부에서도 비슷한 견해가 제기된다. 미국외교협회는 2021년 중국 경제는 2001년 이후 여덟 배 성장하고 4억명의 인구를 절대빈곤으로부터 구해냈다고 분석했다. 글쓴이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외주대장(outsourcer in chief)이었다며 그는 미국의 지배계급 전체가 앓고 있는 질병, 즉 허풍의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클린턴 재임 기간은 미국이 실력도 없으면서 오지랖 넓게 세계 패권국가를 자처한 시발점이었다고 꼬집는다.


키선저 전 국무장관에 대해서는 그가 지정학 문제와 관련해 주장한 발언들이 진부했다고 꼬집는다. 미국 최고 지성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하버드 대학에서 소련 문제에 초점을 맞춰 박사학위 논문을 쓴 백면서생 이론가였을 뿐 복잡한 경제·군사 문제가 얽혀 있는 세계에서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인물이었다고 평가절하한다.


글쓴이는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미국 유력 매체들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는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회원국들은 2020년 3월 회의에서 산유량 목표치를 합의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과 유럽 매체들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권 다툼이 협상 결렬의 원인이라는 분석을 쏟아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는 서구 매체들의 편협한 시각이 반영된 완전한 오판이었다며 당시 러시아는 미국의 셰일오일 업체들을 겨냥했다고 분석한다. 당시 사우디는 결국 러시아의 의도대로 증산에 합의했다. 이후 유가가 하락하면서 원유 생산비가 러시아나 사우디에 비해 높았던 미국 셰일업체들의 파산이 이어졌다.


글쓴이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매체에서는 진정한 지성을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소 편협한 시각으로 보이지만 그래서 글쓴이의 주장은 되레 신선한 느낌을 준다. 우리도 그동안 미국과 유럽 매체들의 시각에 의존해 국제 정세를 이해했고 글쓴이의 관점에서 보면 편협한 시각을 보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몰락을 지적하는 견해는 꽤 오래전부터 계속 제기됐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달러 패권의 시대가 종언을 고할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달러 패권의 시대다. 이 책이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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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제국은 몰락한다 |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 지음 | 서경주 옮김 | 진지 | 388쪽 | 2만2000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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