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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견학만? MZ도 신나서 또 놀러간다는 '국중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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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MZ 관람객 맞이, 박물관의 필연적 변화
고구려관 확대 계획…광개토대왕릉비 탁본 공개 큰 의미
열린 박물관, 동시대의 문화와 만남 공존하는 공간 돼야

지난해 1047만명이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 13개 소속 박물관을 찾았다. 국민 5명 중 1명이 국립박물관을 방문해 문화생활을 즐겼다. 고(故) 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교류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등 특별전시는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상설전시 또한 꾸준히 방문객이 늘어나 박물관은 고루한 교육공간이 아닌, 동시대의 문화와 만남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초등생 견학만? MZ도 신나서 또 놀러간다는 '국중박'을 아시나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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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건물을 그대로 비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거울못과 청자정, 미르폭포와 석조물 정원 등 ‘국보급 산책로’가 조성돼있어 전시 관람이 아니어도 산책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휴식 장소다. 박물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의 용산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지켜온 현장 전문가로 취임 직후부터 ‘모두를 위한 박물관’을 강조해왔다. 윤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내 거울못 산책로를 걸으며 “그동안 박물관은 역사 교육의 공간으로만 인식돼왔지만, 사실 이렇게 멋진 야외 정원도 있고 쉬고 놀 수 있는 곳이 많은 공간이다. 오셔서 편히 쉬시고 놀다가, 지루할 때쯤 한 번 전시장으로 가보면 1000년 전 사람들의 생활상을 만날 수도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28년째 ‘박물관 사람’ 으로 재직 중인데, 어떻게 이 분야에 입문하게 됐는지.

▲대학원 재학 시절 지원 기회가 생겨 운 좋게 박물관에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당시 내 목표는 대학교수였기에 줄곧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다니던 성당 신부님과 축구를 하다가 앉아서 쉬는 도중 신부님이 “목표가 뭡니까?”라고 물으셔서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내 신부님이 “뭘 하려고 교수가 되죠?” 라고 되묻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목표가 교수였을 뿐, 뭘 하기 위해 교수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리고 박물관 전시실에 가봤다. 특별전 중이었는데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와있었다. 초등학생들이 내가 쓴 전시 안내 패널 내용을 보고 노트에 막 적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을 2000명이 읽을까? 200명이 읽을까? 200명이 읽는다면 당신 논문은 아주 훌륭한 논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쓴 전시 패널은 2000명, 2만명, 20만명이 보는데. 그때 깨달았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배운 것을 나누는 것이어야 되구나. 내 얕은 지식을 나누는 방법이 대학교수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도 있구나. 그 순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벌써 이만큼 오게 됐다.


초등생 견학만? MZ도 신나서 또 놀러간다는 '국중박'을 아시나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역사의 길'에 디지털로 재현한 광개토대왕릉비가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서 새롭게 태어난 비석은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유물 모습 그대로로 높이 7.5m(받침대 포함 시 8m), 너비 2.6m 크기의 발광다이오드(LED) 기둥에는 사진과 영상 자료를 토대로 구현한 비석 모습을 각 면에서 볼 수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취임 2년 차에 들어서고 있는데, 취임 이후 강조한 ‘열린 박물관’을 통해 어떤 변화와 성과가 있었나.

▲모두를 위한 박물관에 한 발 더 다가가려 노력했다. 먼저 문화취약계층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전시실 입구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 패널과 음성 안내를 받을 수 있는 QR코드를 설치하고, 영상 공간에는 수어 영상과 음성 자막을 함께 제공했다. 또한, 박물관 내 휴게 공간 곳곳에 쉬운 설명 책자를 배치하는 한편 전시 공간에서 기증 문화유산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 체험물을 통해 발달장애인과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관람객이 더 편안하게 전시를 접할 수 있게 했다.


-문화취약계층 못지않게 MZ세대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 왔는데, 이들은 박물관과 거리가 있는 세대 아닌가.

▲박물관은 하나의 조직으로서도 지속해서 변화를 시도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변화는 ‘새로운 관람객’이다. MZ세대는 미술관엔 가지만 박물관엔 오지 않는다. 제도화된 학교 교육을 통한 경험에서 현장 학습으로 박물관을 찾은 MZ세대의 기억에 박물관에 대한 이미지는 다소 지루하고 일방적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이에 왜 MZ세대가 박물관을 찾지 않는지, 박물관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시기획, 연출 측면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닌 유물들의 맥락, 연관성과 서사를 상상해서 볼 수 있는 시청각미디어를 다양하게 활용해 감각을 확장하고 설명을 영상으로 전달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MZ세대 관람객이 직접 묻고, 또 개선안을 제안하는 홍보 참여 프로젝트도 진행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반영하기도 하고, 또 청자실 ‘고려비색’ 공간에는 특별히 제작한 음악을 사용해 신선한 전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한 전국 13개 박물관 관람객이 1000만명을 돌파했는데, 그 배경이 무엇이라 보는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억눌려 있었던 문화향유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엔데믹 전환과 동시에 특별전이 이어지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은 것 같다. 또한 청주, 광주, 대구 국립박물관으로 이어진 ‘이건희 컬렉션’ 전시가 많은 관람객이 호기심을 갖고 박물관을 찾는 계기가 되면서 우리와는 동떨어진 인물로만 각인된 이건희 회장이라는 인물의 취향과 안목에 대한 궁금증이 일으킨 흥행 효과도 있었다고 본다. 여기에는 탄탄한 전시기획이 뒷받침됐는데, 방대한 이건희 컬렉션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주제로 구성한 스토리텔링에 관람객이 감응하고 호평과 입소문으로 이어진 점이 주효했다. 그리고 다양한 특별전과 기획전으로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상설전시도 관람한 것 또한 고무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전체 418만명의 관람객 중 70% 이상이 상설전시관도 방문했는데, 그 비율이 해마다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초등생 견학만? MZ도 신나서 또 놀러간다는 '국중박'을 아시나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중국 국가박물관이 2022년, 한·중·일 3개국 박물관 공동 기획전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사 연표를 전시한 사건으로 논란이 있었다.

▲해당 전시가 기획 단계였을 때 내가 실장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업무 진행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전시 개최 전 박물관과 연표 작성에 대해 논의를 거치고, 최종 정보를 공유한 뒤 확정했음에도 중국 측은 연표를 조작하고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했다고 표기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중국 측에서는 실무 담당자의 소통 부족으로 발생한 일이라 해명했지만, 이는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것으로 현장 상황과 그간의 논의 과정을 고려하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곧바로 공식 사과와 정정을 요구했다. 향후 국외 전시에서 유사한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전시협약서에 ‘전시 내용이 사전 협의 사항과 다를 경우 전시를 철수한다’는 내용 또한 추가했다.


초등생 견학만? MZ도 신나서 또 놀러간다는 '국중박'을 아시나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박물관의 주요 유물을 활용한 상품(뮷즈·뮤지엄 굿즈)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뮷즈' 매출액은 149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매출액(약 117억) 대비 2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제공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고구려 관련 콘텐츠 강화를 이야기할 때, 국내 고구려 문화유적의 부재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매년 전시관별로 상세 전시를 개편하고 있는데, 관람객 대상 설문조사에서 상설전시 중 보완됐으면 하는 점으로 고구려관을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 2005년 개관 당시도 그랬지만, 고구려의 역사 무대가 주로 중국, 북한 등으로 공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전시할 수 있는 소장품의 양이 적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경기도 북부를 비롯한 한강 유역에서도 고구려 유적이 꽤 많이 발굴됐다. 그래서 그동안 관련 유물을 우리가 조사 연구하면서 완벽하진 않지만, 개관 당시보다는 더 보완할 수 있겠다 싶어 고구려실 확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올해 박물관의 대표 전시 중 하나인 광개토대왕릉비 원석 탁본(비석 표면에 석회를 바르기 전에 떴던 탁본)과 디지털 비석 공개는 고구려 역사를 대표하는 주요 콘텐츠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에 공개한 원석 탁본비석 내용의 원형을 더 잘 반영한 점에서 내용의 판독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한학자 청명 임창순 선생이 소장했던 원석 탁본을 운 좋게 구입할 기회가 생겼고, 박물관에 그 원본을 디지털로 복원해 전시할 수 있는 8m가 넘는 높이의 공간이 갖춰졌다. 석회를 바르기 전, 19세기 말 만든 원석 탁본은 워낙 귀하기에 비문을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을 관람객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초등생 견학만? MZ도 신나서 또 놀러간다는 '국중박'을 아시나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박물관이라는 공간의 역할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지


▲1999년 학예연구사였을 때 박물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겠다고 하니 다들 이해를 못 하시더라. 지금은 박물관에서 패션쇼도 하고 공연도 하는데. (웃음) 박물관은 몇천 년 전 몇 만 년 전의 사람과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박물관에서 마주하는 자료는 모두 사람이 남긴 것이다. 전시를 통해 당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이것을 만들었을까 생각하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그렇게 과거를 만나고 미래를 준비하는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뛰지 마시오’ ‘만지지 마시오’ ‘관람 후 몇 시까지 집합’ 이런 제약 조건으로만 기억되기에 박물관은 너무 매력적인 곳이다. 더 많은 분이 박물관에서 쉬고, 놀고, 옛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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