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예방하기 위해 맞았던 백신이 이제는 치료제로도 탈바꿈하고 있다. 기존 백신처럼 면역력을 끌어올린다면 이를 암을 치료하고 재발을 막는 데도 쓸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시장 성장이 기대되면서 국내외에서 다양한 업체들이 개발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신은 질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맞아 발병을 예방하기 위해 맞는다. 실제로 자궁경부암 등은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로 인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MSD의 가다실 같은 암 예방 백신도 존재한다. 다만 현재 새롭게 개발되는 암 백신은 대부분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면역력을 끌어올려 암을 치료하고, 이후로도 면역세포에 암을 공격하도록 기억하게 해 재발까지 막는 '치료 백신'을 목표로 한다.
현재까지 허가된 암 치료 백신은 미국 덴드레온이 개발한 프로벤지가 유일하다. 2010년 전립선암 대상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상업화에 난항을 겪으면서 덴드레온이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등 이후 암 치료 백신 시장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메신저 리보핵산(mRNA), DNA, 펩타이드 등 다양한 백신 플랫폼이 대두되면서 다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세계 암 치료용 백신 시장이 2020년 3억4563만달러(약 4500억원)에서 연평균 14.6% 성장해 2027년 8억9702만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상용화가 이뤄진 예방 백신 시장이 더 크지만 치료 백신이 보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2027년 32조원으로 기대되는 전체 암 백신 시장 내의 비중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암 치료 백신 시장의 성장세가 연평균 16.0%로 글로벌보다 더 가파르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다양한 국내 기업들이 치료 백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디엑스앤브이엑스(DXVX)는 관계사인 영국 옥스퍼드백메딕스가 개발 중인 항암백신 OVM-200을 도입하기로 하고 주요 거래조건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난소암, 전립선암,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고 실제 항암 효과를 관찰하는 임상시험 1상이 진행 중이다.
다른 국내 기업 중에서는 애스톤사이언스가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DNA 기반으로 개발한 유방암·위암 치료 백신 AST-301이 현재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임상 1상에서 장기 안전성과 면역원성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AST-201(난소암), AST-302(유방암), AST-021p(고형암) 등 4개 파이프라인을 실제 사람 대상 임상에 진입시킨 상태다. 이외에도 한미약품이 비소세포폐암 등에서 나타나는 KRAS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HM99462를 개발하고 있다.
해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암 백신은 모더나가 mRNA 기술을 토대로 개발한 mRNA-4157/V940이다. MSD의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피부암인 흑색종 환자 대상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앞선 임상 2상에서는 키트루다 단독 요법 대비 재발률 및 사망 위험을 44% 줄였다. MSD는 2021년 mRNA-4157에 대한 공동 개발 및 상업화 옵션을 행사하면서 모더나에 2억5000만달러(약 3340억원)를 지급하는 등 높은 기대를 보인다. 이 외에도 칸델의 아데노바이러스 기반 췌장암 백신 CAN-2409, 얼티모박스의 중피종 백신 UV1이 미국 FDA의 패스트트랙 승인을 받는 등 개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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