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단 검사가 보는 가상자산범죄 실태
실체 없는 '스캠코인' 절대 다수
"통신사기,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에도 적용"
사법협조자 감면제도·인력충원도 필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회의실. 합수단 소속 이은우 검사(43·사법연수원 42기)는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에서 지원 나온 실무진들과 수사 관련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전자칠판에 복잡한 가상자산 전자지갑 흐름도를 띄워 놓은 채 이 검사와 팀원들은 자금 흐름 추적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국내 유일한 가상자산 전담 수사 조직인 남부지검 합수단은 지난 7월26일 출범했다. 이 검사는 자원해 합수단에 합류했다. 최근 금융법학회와 검찰 커뮤니티의 공동학술대회에서 ‘통신사기’ 조항을 적용해 가상자산 범죄를 단죄하는 미국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 검사에게 현재 가상자산 범죄의 실태와 법적·제도적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가상자산 범죄를 수사하면서 느낀 기존 증권·금융 범죄와의 차이점은.
▲증권·금융시장은 금감원 같은 1차 감독기관이 있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조사가 된 상태에서 사건이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합수단의 사건은 1차 기관이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증거를 수집·분석해 시간이 더 걸린다. 인력 문제도 있다. 수사 과정에서 상당한 IT 지식이 필요하다. 대검찰청 및 유관기관에서 지원해 온 IT전문 수사관, 요원들이 큰 힘이 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코인 관련 범죄는 잦다. 코인을 추적해야 하는 일이 꽤 있어 그 수요는 커지는데, 인력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가상자산 범죄 유형은 무엇인가.
▲실체가 없는 가상자산을 발행·유통하는 일명 ‘스캠코인’ 사건이다. 가상자산은 주식·채권과 다르게 객관적 가격을 산정하기 어려워 시장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일단 거래소에 상장되면 허위공시, 자전거래 등을 통한 '시세조종'이 가능하다. 자본시장법에서는 불법이지만 가상자산의 경우 직접적인 처벌 규정이 없어 사기, 업무방해, 업무상배임 등을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다만 발행 준비 단계부터 상장 폐지까지 내부자들의 공모, 역할 분담 및 수행 등 전모를 밝혀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가상자산 범죄에 미국이 적용하는 ‘통신사기’ 조항의 국내 도입 검토를 주장했다. 통신사기란 무엇인가.
▲미국 연방 형법상 통신사기죄의 법문에 따르면 사기로 재산을 취득하려 한 자가 이를 실행할 목적으로 주(州)간 혹은 외국과의 교역에서 통신 수단을 통해 문서·신호 등을 전송하거나 전송되도록 원인을 제공한 경우 벌금형이나 2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 미국 판례는 고의를 가지고 주 간 통신망을 사용해 사기에 가담한 경우 통신사기가 성립한다고 본다. 증권성이 없는 가상자산의 경우 미국도 증권사기 조항을 적용할 수 없어 처벌 대상을 한정하지 않은 통신사기 조항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신종 범죄라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불법의 합법화'로 호도되는 상황에서, 통신사기 적용은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고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면 처벌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의 통신사기 사건 중 한국 범죄와 비슷한 유형이 있나.
▲실현 불가능한 가상자산 결제 시스템 개발 사업을 한다고 투자자들을 모집한 '센트라텍' 사례는 국내의 전형적인 스캠코인 사례와 일치한다. 센트라텍 창업자는 이 범행으로 징역 8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거래소 직원이 미공개정보인 특정 코인의 상장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올려 처벌받은 '코인베이스' 사례도 있다. 해당 직원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통신사기 조항의 국내 도입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의 통신사기는 국내 사기죄보다 구성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폭넓게 의율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기 범행에서 상대방의 피해액이나 처분행위 간 인과관계가 명백히 인정되지 않더라도 범죄자가 사기 의도로 통신 수단을 썼다는 것만 입증하면 처벌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피해자와 기망 행위가 어느 정도 특정돼야 해 혐의 입증에 필요한 자료의 양이 더욱 방대할 수밖에 없다. 전화·인터넷·SNS를 활용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기 범행에 대한 대응 측면에서 통신사기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내년 7월 시행될 가상자산법안이 그간 제도적 허점을 보완할 수 있을까.
▲가상자산법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시세조종 등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과 유사한 조항들을 담고 있고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이상거래에 대한 상시 감시 및 보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민간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공공기관 수준의 시장 감시를 기대하기엔 한계가 있어 공적 감시·감독을 강화할 방안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 가상자산이 상장폐지되면 백서나 공시자료 등 투자 판단 근거 자료들이 삭제되는 경우가 있는데, 공적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임의 삭제를 막으면 실체 없는 가상자산이 상장·유통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가상자산 범죄 수사에는 장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보완할 방법도 있을까?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사법 협조자' 감면제를 가상자산법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내부 공모자 협조 없이는 수사·처벌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코인을 매번 영장을 청구해 추적하는 것보다 명확한 진술을 바탕으로 추적하는 게 더 빠를 수밖에 없다. 수사가 빨라야 피해자들의 피해회복도 빨라질 것이다.
▶이은우 검사 프로필= 사법연수원 42기로 2013년 서울동부지검, 2015년 창원지검 마산지청, 2018년 부산지검 서부지청, 2022년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조사를 위한 특검,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등을 지냈다. 2020년 듀크대 법학 석사 학위(LLM)을 취득했으며 같은 해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2020년 7월부터 2021년 1월까지는 월드뱅크에서 컴플라이언스 관련 업무를 맡았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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