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 간 전쟁의 여파로 달러·금(金) 두 안전자산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연중 축소 추세던 달러예금은 지난달부터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지만, 골드뱅킹(금 통장) 잔액은 주춤거리는 모양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 9일 기준 달러화 예금 잔액은 557억 달러로 집계됐다. 열흘 전인 지난달 말 대비론 5.9%(31억 달러), 연중 저점이었던 지난 9월 대비론 16.8%(80억 달러) 증가한 수치다.
올해 4대 은행의 달러 예금은 1월 612억 달러를 기록한 이래 ▲2월 561억 달러 ▲3월 565억 달러 ▲4월 519억 달러 ▲5월 544억 달러 ▲6월 574억 달러 ▲7월 552억 달러로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9월 들어선 차익실현을 위한 매도가 이어지며 477억 달러까지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고점이 1360원이었고 이후 1350원대에서 횡보가 이어졌다"면서 "이를 고점으로 인식한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을 위해 매도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중순 이-팔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달러 예금은 반등하는 추세다. 중동 정세가 악화되며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단 우려가 확산되며 지난 10월엔 전월 대비 10.1% 늘어난 526억 달러로 늘었고, 이달 들어선 9일 만에 5.9% 증가한 557억 달러로 확대됐다.
다만 이런 흐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이-팔 전쟁이란 지정학적 리스크가 잔존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달러 환경이 동시에 조성되고 있는 탓이다. 우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중심으로 긴축종료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달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선 금리동결과 함께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덜 매파적'인 발언이 나와 긴축종료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상태다.
특히 최근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하회하면서 달러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10월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15만개 늘어 전문가 전망치(18만개)를 밑돌았다. 또한 이는 전월(29만7000개)과 최근 12개월 평균(25만8000명)을 크게 밑돈다. 고용시장이 예상보다 냉각되면서 긴축종료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지고 있는 상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05.50원으로 전월 말 대비 47.30원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미국의 경기 하강, 한국의 수출 회복세 등 약달러 현상을 불러일으킬 소재가 적지 않은 만큼 달러화 투자에 신중한 태도가 요구된다고 설명한다. 허도경 신한은행 PWM목동센터 PB센터 팀장은 "연말부터는 미국 경기가 다소 침체될 가능성이 있고, 국내 수출도 회복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원·달러 환율은 1280~1300원대에서 횡보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Fed도 긴축을 마무리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당분간 약달러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금은 달러 예금과 달리 별다른 빛을 보고 있지 못하다. 골드뱅킹을 취급하는 3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의 지난 7일 기준 골드뱅킹 잔액은 4997억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달 말(5197억원) 대비론 200억원, 연중 고점인 지난 8월 말(5767억원) 대비론 770억원 감소한 수치다.
지난 5월 한때 트라이온스(T.oz) 당 2000달러를 돌파했던 국제 금 시세는 지난달 초엔 1800달러 선으로 내려앉았지만, 이-팔 전쟁이 시작되면서 다시 1900달러 선 넘어선 상태다.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기준 국제 금 시세는 트라이온스 당 1969.80달러까지 올랐다.
금융권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남아있는 지정학적 이슈가 있어 금 수요의 하단을 지지하겠으나, 이미 금값은 역사적 고점 수준이어서 상승 여력이 크진 않다고 본다"며 "내년에도 이슈에 따라 1800~2100달러 선에서 횡보할 가능성이 높고,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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