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달러(662조 3,500억 원)."
지난 13일 척 슈머 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개최한 ‘인공지능(AI) 인사이트’ 포럼 참석을 위해 미 의회를 찾은 빅테크의 순자산을 합친 액수다. 샘 울트먼 오픈 AI CEO, 사티아 나델라 구글 CEO 등 생성형 AI 기술 리더십을 갖고 있는 기업인들은 물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나 젠슨 황 엔비디아 CEO까지 쟁쟁한 미국 빅테크 대표들이 다 모였다.
글로벌 IT 시장을 주름잡는 이들이 한날한시에 모인 것은 ‘AI 규제’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날 자리는 단순한 논의 자리가 아니었다. 비공개 포럼임에도 불구하고 60명의 상원의원이 참관했으며, 빅테크 외에도 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이 들 중 24명의 포럼 참석자에게 AI 기술 발전에 따른 정부의 역할을 확인하기도 했다. 흡사 입법 전 의견 청취 절차가 이뤄지는 것과 같은 행보였다. 전날 열린 미 상원 사업소위원회에서는 리처드 블루멘털 상원의원(코네티컷주 민주당)과 조쉬 할리(미주리주, 공화당)의원이 AI 규제의 철학을 담은 프레임 워크를 발표하기도 했다.
빅테크 대표들은 하나 같이 미 정부의 AI 규제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이를 뜯어 보면 다른 의미가 읽힌다. 빅테크들이 ‘AI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보면 AI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와 인류를 위한 빅테크 히어로들의 자발적 규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미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으면, AI 시대도 미국이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공감대의 방점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최근 빅테크들의 행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빅테크들은 올해 들어 AI 윤리팀을 줄줄이 줄이거나 없애면서 AI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빅테크들이 미 정부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의사가 있다면 오히려 이를 AI 윤리팀을 늘려야 하지 않았을까. 미 매체 악시오스는 최근 미 65개 대학의 213명의 AI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가 미 AI 연방기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AI 국제기구가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22%에 그쳤다. 앞서 AI 규제 프레임 워크를 발표한 할리 의원이 이날 자리와 관련해 "대형 기술 기업을 위한 거대한 칵테일파티"라며 "왜 우리가 세계의 가장 큰 독점 기업들을 초대해 그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돕고 대중에게 공개를 폐쇄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의회에 제공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비판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결국, 빅테크 CEO들의 이날 회동은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를 활용한 이른바 ‘잇속 챙기기’다. 이들을 맞는 우리의 자세는 달라져야 한다. 미국의 AI 패권 확립은 다른 국가의 AI 종속으로 읽힌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 시대에 빅테크의 점령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AI 기본 원칙을 담은 ‘디지털 권리장전’이 나온다고 한다. 이 안에는 AI 규제 주권을 확립할 방안도 담기기를 기대해 본다.
황준호 국제 1팀장 rephwa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