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실질실효환율 74.31
1995년 대비 구매력 반토막
엔저 지속시 가계부담 18만엔 늘
일본은행(BOJ)의 대규모 금융정책 여파로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주요국 통화에 대한 엔화의 구매력이 50여년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엔저로 에너지 등 원자재 수입비용이 늘면서 일본 가계의 부담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30일 BOJ에 따르면 지난달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74.31(2020년=100)을 기록했다. 이는 50여년 내 최저치에 근접한 수치다. BOJ는 2020년 기준으로 1980년을 100(1980년1월1일 101.44)으로 보고 현재까지의 실질실효환율을 공개하고 있는데, 최근 수치는 이중 최저 수준이다. 다만 외신들은 2020년 기준 1970년대 실질실효환율을 70대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1970년은 일본이 물가 안정을 이유로 고정환율제를 실시하던 시기로, 달러당 엔화가치는 360엔에 고정됐다. 이때와 실질실효환율이 비슷하다는 뜻은 53년이 지났는데도 엔화의 가치가 제자리걸음에 머물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이 가장 높았던 시점은 1995년 6월(193.97)으로, 해당 시점 대비로는 반토막이 넘게 구매력이 떨어졌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국가의 통화가 상대국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수치가 100보다 낮으면 환율이 저평가됐다는 것을 뜻한다.
엔화의 구매력이 하락했다는 것은 수입물가에서도 드러난다. 엔화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올때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에 수입품 가격이 뛴다.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엔저 사태가 본격화 되기 시작한 2021년 말에 비하면 10%가 올랐다. 장바구니 물가도 크게 뛰었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우유와 버터의 가격은 전년대비 각각 8%, 10%가 올랐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산 파스타의 가격이 28%가 뛰는 등 유럽산 수입품 가격이 대폭 올랐다.
엔화의 구매력 하락은 일본 가계에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시장조사 기관인 미즈호 리서치 앤 테크놀로지스는 올해를 시작으로 엔화가치가 1달러당 145엔 전후에 머무른다고 가정했을 경우 한 가구당 생활비가 18만8000엔 가량 더 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물가 대책이 있다는 가정하에 예측한 통계로, 만약 정부가 특별한 지원 정책을 펼치지 않을 경우 부담 액수는 20만엔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사카이 사이스케 이코노미스트는"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생활비 부담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엔화가 낮은구매력을 회복하려면 임금과 물가의 동반상승을 이끌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물가 상승세에 따라 임금이 올라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되살아나고 기업들도 더 많은 투자에 나서야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소비자물가지수(CPI)는 BOJ의 목표치(2%)를 넘어선 3%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임금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이 15개월 연속 하락세를 걷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은 30년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요 국가들에 비해 화폐 구매력이 크게 낮아졌다"며 "엔화가 구매력을 되찾으려면 물가와 임금상승의 선순환이 궤도에 올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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