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고령화 사회, 삶을 품위있게 마무리해야"
무의미한 연명치료 거부·유언장 작성 등
건강해야 웰에이징·웰다잉 가능
"의학이 발달하다 보니 죽음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지 말고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면서 내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자는 운동입니다."
이달 초 서울 중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는 ‘웰다잉(Well-Dying)’이 무엇인지 묻자 이렇게 설명했다. 죽음을 맞서야 할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해 건강하게 준비하자는 뜻이다.
웰다잉문화운동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원 대표는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계 원로다. 지역구였던 경기도 부천에서만 국회의원 배지를 5번 거머쥐었다. 지난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웰다잉 전도사’로 대중들 앞에 나서고 있다. 지금은 사단법인 웰다잉문화운동의 공동대표를 맡아 웰다잉을 주제로 한 강연과 포럼, 인터뷰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웰다잉, '잘 죽자'는 운동
웰다잉은 말 그대로 ‘잘 죽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다시 말해, 어느 삶이든 끝이 있다는 자연의 섭리를 인정하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뜻이다. 이를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유서를 미리 작성해두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장례 과정에서 허례허식을 최대한 줄이자는 내용도 함께다.
웰다잉이 필요한 이유는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원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국내 사망자 중 병원에서 죽는 사람이 75%가량을 차지한다. 가정 등 여타 장소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 병원에서 삶을 마치는 사람의 비중이 훨씬 큰 셈이다.
삶의 마지막까지 고통받다가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사망 전 24시간 이내에 이뤄지는 처치 행위는 인공호흡기 착용 30%, 심폐소생술(CPR) 40%, 혈액검사 90% 등이다. 사망 직전까지도 연명을 위한 치료와 검사를 받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스럽게 떠나는 것보다는 생전에 연명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히자는 게 웰다잉 문화의 하나다. 연명치료가 무의미한 상황이 온다면 무리한 치료보다는 편안한 마지막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웰다잉 문화 중에서도 국내에서 잘 시행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유언장 작성이다. 미국은 성인의 56%가 유언장을 미리 남겨두는 반면, 우리나라는 관련 통계조차 없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의 0.5%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원 대표는 "몇 달 전 건강했던 친구가 갑자기 쓰러져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이틀 만에 떠났는데, 조문을 가 보니 부인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해보고 떠나보냈다며 눈물지었다"면서 "유서를 통해 가족과 지인들에게 고마웠다는 이야기라도 써놨다면 남은 사람들이 위안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유언장은 법적으로 자필을 통해 명확한 내용을 이름과 생년월일 등과 함께 적으면 된다. 조금 더 확실하게 유언장의 내용을 보증받고 싶다면 공증인을 통해 공증받으면 좋다. 웰다잉문화운동에서도 유언장 쓰기 캠페인을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다. 원 대표 본인도 유언장을 이미 작성해뒀다. 유언장 작성을 어렵게 느끼는 문화에서 벗어나 편한 마음으로 쉽게 대하자는 게 목표다.
건강해야 '웰다잉'…"하루 만보 걸으려 노력"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르면 2025년부터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만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보다도 고령화 진행 속도가 3배 이상 빠르다. 그만큼 죽음도 늘어나는 ‘다사 사회’에 접어드는데, 죽음에 대한 대비가 적다면 개인과 가족의 혼란을 넘어 사회적인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원 대표는 "1000만 노인 시대에 당당하고 잘 정리된 노년기와 죽음을 준비하는 건 우리 사회의 품격과 활력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원 대표는 웰다잉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지나치게 꺼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족이나 주변 지인과 함께 죽음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언젠가는 닥쳐올 죽음에 함께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명치료 여부나 장례 절차, 유산 분배 등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웰다잉은 남은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방법"이라며 "남은 사람들의 갈등이나 혼란, 낭비를 줄이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웰다잉의 필수적 요소다.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해야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편안한 마무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은 죽음을 준비하는 웰다잉뿐 아니라 잘 늙어가자는 의미인 ‘웰에이징’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노년기와 삶의 마지막에서도 고통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 대표도 이를 위해 평소 걷기를 통해 건강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경기도 부천의 자택에서 서울 중구의 사무실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강연 등으로 이동할 일이 있을 때도 대중교통을 애용한다. 그는 걸음 수가 표시되는 손목시계를 활용해 하루 만보 이상을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 대표는 무엇보다도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 대표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회피하는 ‘안티다잉’과 같은 분위기"라고 지적하며 "이제는 죽음을 당당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자는 게 바로 ‘웰다잉’ 문화"라고 강조했다.
대담=이경호 바이오헬스부장 gungho@asiae.co.kr
정리=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