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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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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이 누린 자기 기록…왕족은 통치술로도 활용
사진기 발명으로 초상화 위상 꺾여…국립중앙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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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명화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의 주제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입니다. 특징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린 초상화가 유독 많다는 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1년 '시대의 얼굴'이란 주제로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컬렉션을 전시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초상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초상화, 공식 기록…권력과 상징 담아

초상화는 사람의 얼굴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화려한 헤어밴드, 섬세하고 풍성한 자수, 옷 전체에 수 놓인 금사, 그 위를 장식한 진주, 위풍당당한 자세에 압도됩니다. 왕족, 적어도 큰 권력을 쥔 귀족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누굴까요? 바로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권위와 메시지를 잘 활용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자세히 볼까요? 시선이 쏠리는 곳은 화려한 중심부입니다. 특히 수많은 진주가 눈에 띄네요. '순결'을 상징하는 진주는 엘리자베스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왕임을 알려줍니다.


진주는 엘리자베스 1세가 사랑했던 보석이었습니다. '순결'과 '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순결은 통치술이자 외교 무기로 활용됐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여자였기에, 그녀와 결혼하는 왕이 영국의 왕위 계승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복잡한 국제 정세 속 외교 수단으로 혼인하지 않은 여성임을 강조했지요.


대내적으로는 권위와 신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활용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권력을 가진 왕을 넘어 신이 부여한 권능을 지닌 존재로 자신을 드러낸 것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궁정에서도 순결한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시녀에게 검은색과 흰색 드레스만 입도록 했습니다.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또 시선이 머무는 곳은 오른손으로 살포시 쥔 장미 한 송이입니다. 이는 엘리자베스 1세의 혈통인 튜더 왕조를 상징하는 '튜더 장미(Tudor Rose)'입니다. 즉 엘리자베스 1세가 튜더 왕조의 시작인 할아버지 헨리 7세, 아버지 헨리 8세를 이어 왕위를 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 자매 메리 1세의 초상화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메리 1세 역시 초상화에서 장미를 쥐고 있습니다.


다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로 돌아가볼까요? 손 바로 위 가슴에 놓인 불사조 장식은 '불멸'을 나타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큰 업적 중 하나는 1588년 칼레 해전을 계기로 바다의 패권을 스페인으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이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발돋움합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영광이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기원이 담긴 셈입니다.


이처럼 초상화는 권력자의 업적을 기록하는 수단이자,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되는 선전물이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인 이유입니다.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숙녀의 초상(La Dama in Rosso), 지오반니 바티스타 모로니.


사진이 없던 시대 부자와 권력층이 향유한 특권

르네상스 시대에도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상화의 주인공은 권력자에서 부유층으로 다양해집니다. 현재 전시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의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도 인상적인 작품이 많이 보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유명했던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가 그린 초상화입니다. '숙녀의 초상(La Dama in Rosso)'라는 제목의 작품은 사실적인 표현과 강렬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보다 검소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화려합니다. 진홍색 비단 옷감에서 부유함이 느껴집니다. 상체 보디스에는 슬래시(구멍처럼 생긴 부분) 장식이 있는데, 금사로 마감했습니다. 붉은색과 황금색이 눈을 어지럽힙니다. 목둘레를 빳빳하게 감싸는 러프 안쪽은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앉아있는 공간을 볼까요? 회색 벽 아래 대리석 장식이 눈에 들어오네요. 주인공은 루치아 알바니 아보가르드 백작 부인, 즉 귀족으로 추정됩니다.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숙녀의 초상(La Dama in Rosso) 부분 확대, 지오반니 바티스타 모로니.


그림이 그려진 16세기 유럽은 종교적으로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커지던 때입니다.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북부와 독일 등은 신교 영향을 받아 귀족들과 신흥 부유층은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모직 산업과 무역업, 금융업이 발달했던 시기입니다.


르네상스로 넘어오며 복식도 바뀌고, 화려하게 치장하려는 욕망이 넘쳤습니다. 사치품이 귀족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자 '사치금지법'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이 왼손으로 부채 손잡이를 가리듯 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부채는 귀족 여인들의 필수 장식품이었는데, 손잡이를 값비싼 귀금속 등으로 꾸미는 탓에 벌금을 매겼습니다. 즉 이 초상화는 의뢰인의 공식 사진이지만, 자신의 부를 은연중에 자랑하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2012년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을 덮쳤을 때, 현장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이 피해 주민 할머니를 감싸 안고 있다.(사진= 오바마 대통령 전속 사진사 피트 수자)



이미지 정치, 초상화에서 사진으로

"이제 회화는 죽었다."

- 프랑스 화가 들라로쉬


초상화의 위상은 1839년 사진기의 등장으로 위축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되자 그림의 문법이 바뀝니다. 인상주의 사조가 나타난 시기도 이때입니다.


이제 사진이 한 장이 더 큰 메시지와 사회적 담론을 담아낼 수 있게 됐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식 사진을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힙니다.


2012년 10월 초대형 허리케인이 발생했을 당시 사진이 유명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동부지역에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덮치자 곧 뉴저지주 피해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전속 사진작가는 대통령이 이재민을 만난 순간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재난 한가운데 놓인 국민을 안아주는 대통령 모습이 마치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는 국가의 존재를 연상케 합니다. 함께 슬퍼하는 대통령,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 연출 없는 모습. 뉴욕타임스는 2020년 이 사진에 관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람직한 대통령상을 그려낸 작가"라고 평했습니다.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의 공식사진 변천


자본시장의 중심지 여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고경영자(CEO) 사진은 증명사진 수준에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는 데 주력합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의 공식 사진을 볼까요? 과거 사진은 검은색 배경에 정장을 입은 성공한 CEO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현재는 재킷을 벗고 사무실에 앉아 메모하는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분명 몇 년이 더 지났음에도 지금 사진이 훨씬 젊어 보이지 않나요?


조직과 소통하는 CEO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공개하기도 합니다. 한양증권이 대표적입니다. 임재택 대표의 공식 사진은 CI를 배경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대표이사와 젊은 직원들이 동등한 비중으로 나옵니다. 심지어 대표의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의도 미술관]⑥권력·메시지의 총체 초상화…대통령·CEO 사진도 변화 임재택 한양증권 대표이사의 공식사진(왼쪽), 임 대표와 직원들이 함께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오른쪽)

이처럼 초상화(공식 사진)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때로 말보다 강한 힘을 갖지요. 사진은 연출 없이 순간을 포착할 수 있어 파급력이 더 큽니다. 각 기관이 공식 사진에 신경 쓰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들이 기사를 읽을 때 보이는 사진들도 모두 해당 기관이 심사숙고해 언론에 공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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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사진기가 없었던 시대의 인물들과 만나는 건 어떨까요? 그림 앞에서 과거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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