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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의 酒저리]시향가, 충돌하는 재료 안에서 조화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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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남 곡성 '시향가'①

끈적한 토란으로 매끈하게 빚어낸 토란막걸리
멜론의 달콤함 그대로 담아낸 ‘우주멜론미’
맛의 일관성 중시…약속한 맛 끝까지 지켜야

“저는 평범한 향을 팔고 싶지 않아요. 서로 충돌하는 공격적인 재료를 넣어 조화롭게 만들고 싶죠.”


영국의 조향사이자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과 '조 러브스(Jo Loves)'의 창립자인 조 말론(Joanne Lesley Malone) CBE(대영제국 훈장 수상자)는 뻔한 향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향을 꿈꿨다.


조 말론이 처음 ‘넛멕(육두구) 앤 진저(생강)’와 ‘라임 바질 앤 만다린(귤)’이란 향수를 만들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런 재료로 만든 향수는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바질에서 종종 나는 아니스 향이 좋지 못한 향을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좋은 향을 만들어냈고, 조 말론은 이 향수들이 다른 제품보다 40배 이상 팔리며 연금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서로 다른 재료를 골라 혼합하다 보면 재료들끼리 서로 싸우며 충돌하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통해 최적의 조화를 찾아낼 때 혁신적인 향을 품은 제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이런 방법론은 그의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끌었고, 사람들의 창의성을 자극했다. 서로 충돌하는 재료 안에서 조화를 찾는 일이 조향사만의 일은 아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 안에서 자신만의 향을 담은 술을 빚어내는 곳도 있다. 향기를 베푸는 곳, 전남 곡성 ‘시향가’다.


[구은모의 酒저리]시향가, 충돌하는 재료 안에서 조화를 찾다 시향가의 토란 막걸리 '시향가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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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대학생활서 만난 전통주…창업으로 이어지다

2015년, 서른넷이 되던 해였다. 늦다면 늦은 나이겠으나 만학도(晩學徒)라 부르기에는 다소 어린 나이에 양숙희 시향가 대표는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딸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열정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고,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급도 컸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가 향한 곳은 대체의학과였다. 평소 약재에 대한 관심이 그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통주와 만났다. 매주 한 번씩 찾아오는 양조 수업이 참 좋았다. 특히 전통주에 한약재를 접목해 술을 빚는 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학과 내 전통주 동아리인 ‘누룩꽃’에 들어갔고, 금세 회장 자리까지 꿰찼다.


열심히 빚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밤낮없이 빚었다. 즐거웠고 소질도 있었다. 그렇게 졸업이 가까워지고 그는 졸업작품으로 ‘동의보감’에 보양주로 소개된 ‘황구주’에서 영감을 얻어 흑염소로 술을 빚게 됐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양 대표의 흑염소주가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의 흑염소 사육 농가와 협회 등에서도 그에게 흑염소주 주문을 의뢰했다. 한동안 흑염소주를 바쁘게 만들어 팔면서 그는 양조가이자 사업가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구은모의 酒저리]시향가, 충돌하는 재료 안에서 조화를 찾다 전남 곡성에 있는 '시향가' 전경

방향이 정해지자 해야 할 일도 명확해졌다. 창업자금 마련이 우선이었다. 그가 눈을 돌린 곳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였다.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유망 아이템이나 혁신기술을 보유한 창업자를 발굴해 성공적인 창업에 이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으로, 사업계획서가 통과돼 입교하게 되면 교육과 시제품 제작 등의 과정을 거쳐 창업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양 대표는 지금의 시향가를 있게 한 데는 청년창업사관학교 입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특산주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입교한 것이 시향가가 처음이었다”며 “10개월이라는 타이트한 시간 안에 주류면허 획득과 제품 개발 등 주어진 과업을 모두 수행해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양 대표는 모든 과업을 이행해냈고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목표한 창업자금을 모두 확보했다. 그렇게 2019년 양 대표의 양조장은 시향가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끈적한 토란, 맑고 부드럽게 막걸리에 녹여내다

양조장을 준비하며 가장 시간과 마음을 들인 건 단연 술이었다. 흑염소주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주세법상 기타 주류로 분류되는 흑염소주의 특성상 높은 세율 등을 고려하면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은 아니었다. 시향가의 얼굴이 될 다른 술이 필요했다.


[구은모의 酒저리]시향가, 충돌하는 재료 안에서 조화를 찾다 시향가 토란 막걸리에 사용되는 토란

다양한 지역농산물을 탐색하던 양 대표의 눈에 들어온 건 토란이었다. 사실 전국 토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곡성에서 토란은 흔한 작물이었지만 특유의 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던 양 대표가 애써 외면하던 작물이기도 했다. 그가 마음을 바꿔먹은 건 적은 수요로 판로 확보에 애를 먹고 있던 지역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토란으로 막걸리를 빚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토란은 술로 빚어내기 만만한 재료가 아니었다. 땅의 달걀이란 뜻의 토란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배변 활동에 도움을 주고, 칼륨이 많아 고혈압 예방에도 효과적인 식품이다. 하지만 다양한 효능과 별개로 토란에 다량 함유된 뮤신으로 인한 특유의 걸쭉하고 끈적이는 식감은 맑고 깔끔한 술을 만들고자 했던 양 대표에게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때부터 찌고, 삶고, 말리고, 튀겨도 보며 갖은 방법을 시도해보며 최적의 토란 가공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수없이 다양한 시도 끝에 찾은 해법은 동결 건조였다. 토란의 껍질을 벗겨 쌀뜨물에 담근 뒤 얇게 썰어 동결 건조해 칩을 만들었고, 그 토란칩을 고두밥에 넣고 찐 다음 15일을 숙성해 천으로 짜서 술을 담갔다. 그랬더니 걸쭉함과 아린 맛이 사라졌다. 그렇게 지역의 친환경 쌀과 함께 빚어낸 술이 바로 양조장 이름과 같은 토란 막걸리 ‘시향가’다.


[구은모의 酒저리]시향가, 충돌하는 재료 안에서 조화를 찾다 시향가의 토란 막걸리에는 동결 건조한 토란칩이 사용된다.

시향가라는 양조장 이름도 토란으로 막걸리를 빚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양 대표는 “무색무취인 쌀과 토란이라는 두 재료를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나 다채로운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며 “이런 좋은 향기를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고 싶다는 생각에 베풀 시(施)와 향기 향(香), 집 가(家)를 사용해 시향가라고 이름 붙였다”고 말했다.


시향가의 토란 함유량은 20%나 된다. 현재 주세법상 쌀과 누룩, 물을 제외한 부재료는 최대 20%까지 허용되는 만큼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를 넣은 셈인데, 작년 한 해 사용한 토란양만 5t이 넘는다. 이렇게 토란을 아끼지 않고 빚어낸 시향가는 산미가 없고 여느 막걸리와 다르게 잔에 술이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맛이 특징이다.


시향가는 최근 첫 출시 이후 이어오던 500mL 플라스틱병을 벗어던지고 375mL 유리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단순히 옷만 갈아입은 건 아니다. 기존 멥쌀을 사용해 이양주로 빚던 것을 멥쌀에 찹쌀을 더해 삼양주로 제조방식을 바꿨고, 유통기한도 45일에서 5개월로 늘어났다. 이름 역시 품질에 맞춰 ‘시향가 프리미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양 대표는 “덧술을 할수록 알코올 도수가 안정적으로 나오고, 후발효의 위험도 줄어들게 된다”며 품질 개선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상업 양조는 맛 균일해야…맛의 일관성 지킬 것

토란 막걸리 시향가와 함께 시향가를 또 다른 주역이 멜론을 부재료로 사용해 지난해 선보인 막걸리 ‘우주멜론미(Would you Melon me)’다. 멜론 역시 곡성에서 나는 머스크멜론을 사용한다. 우주멜론미는 사실 양 대표가 양조장 문을 열 때부터 선보이고 싶었던 제품이다. 하지만 수분 함량이 높은 멜론의 특성상 토란과 마찬가지로 막걸리로 빚어내기 쉬운 재료가 아니었고, 자연스레 연구와 개발 기간도 길어졌다.


토란의 경험을 살려 멜론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해 술에 넣어봤다. 토란에 사용했던 동결건조 방법도 사용해봤지만, 멜론에는 통하지 않았다. 좀처럼 멜론의 달콤한 맛을 살리진 못하고 오이 맛이나 비릿한 맛을 내기 일쑤였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서 찾았다. 계약재배 농가를 찾던 과정에서 웨지 모양으로 잘라 냉동 보관하던 멜론을 발견한 것이다. 양 대표는 “급랭시킨 멜론으로 청을 담가 건더기는 밑술을 빚을 때 넣고, 국물은 삼양주로 빚은 뒤 마지막에 가수할 때 물과 함께 넣으면 멜론의 당도와 향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구은모의 酒저리]시향가, 충돌하는 재료 안에서 조화를 찾다 시향가의 멜론 막걸리 '우주멜론미'

올해로 5년 차를 맞은 시향가는 차분히 라인업을 늘려가고 있다. 토란 막걸리 시향가를 시작으로 토란가루를 넣어 만든 캔 막걸리 ‘말이야 막걸리야’를 출시했고, 지난해에는 멜론을 넣은 우주멜론미, 올해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체리 약주 ‘선셋 체리 스파클링 약주’도 선보였다. 연내 증류식 소주 2종과 부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순곡주 막걸리 한 종도 새롭게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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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표는 제품군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한 가지 원칙만은 흔들리지 않고 지켜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업 양조는 맛이 균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 배치(Batch)별로 술맛이 다른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시향가가 지향하는 바와는 거리가 있다”며 “시향가는 배치와 상관없이 모든 병에서 처음 약속한 맛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품질 관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피력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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