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 취소소송 패소
기소유예 처분 받아 2분의 1 정지 기간 줄여 처분 사례
의료법상 '의료기관 중복개설 금지' 조항 때문에 더 이상 병원을 개설할 수 없는 사람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한 의사에 대한 면허 자격정지 처분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는 치과의사 이모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사면허 자격정치 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이 비례의 원칙 등에 위반돼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했다거나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이씨의 청구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부산 중구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이씨는 박모씨가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한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2013년 1월 울산 남구에 매달 일정한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명의로 치과병원을 개설한 뒤 박씨에게 실질적인 운영을 맡겼다. 이 같은 편법 운영은 2017년 9월 30일까지 4년 9개월 동안 계속됐다.
이씨는 이 같은 의료법 위반 행위로 2019년 1월 검사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가소유예 처분은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처분이다. 불기소 처분의 일종이지만 '죄 안됨', '혐의 없음' 등 처분과 달리 피의자가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인정된다는 검사의 판단이 전제가 된 처분인 만큼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통해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툴 수 있다.
비록 기소는 면했지만 복지부 장관은 2022년 6월 8일 의료법을 위반한 이씨에게 '1개월 15일의 치과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의료법 위반에 관한 적정한 행정처분 기준을 정하기 위해 마련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보건복지부령)에 따라 내려진 조치였다.
의료법 제66조(자격정지 등) 1항 2호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한 때' 복지부 장관이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리고 위 규정을 위반한 의료인에 대해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애서는 '자격정지 3개월'을 부과하도록 했다. 한편 검사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우에 대해 이 규칙에서는 '해당 처분기준의 2분의 1의 범위에서 감경하되, 최대 3개월까지만 감경'이 가능하도록 정했다.
즉 원래는 규칙상 3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려야 되지만, 검사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점이 고려돼 장관이 자격정지 기간을 절반으로 줄여 1개월 15일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던 것.
재판에서 이씨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을 펼쳤다.
첫 번째는 처분시효가 도과됐다는 주장이었다.
2016년 신설된 의료법 제66조 6항은 '자격정지처분은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5년이 지나면 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단서에서 '다만 그 사유에 대하여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해당 사건의 재판이 확정된 날까지의 기간은 시효 기간에 산입하지 아니 한다'고 정했다.
이씨는 자신이 박씨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한 전체 기간 중 복지부 장관의 자격정치 처분이 내려진 날(2022년 6월 8일)로부터 5년보다 더 이전의 기간(2013년 1월 2일부터 2017년 6월 8일까지) 동안 이뤄진 행위는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료법을 위반한 의료행위 기간이 줄어들어야 하는 만큼 처분의 수위도 더 낮아져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록 의료법에 처분시효를 5년으로 정한 조항이 신설됐고, 같은 법 부칙에서 법 시행일 이전 그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자격정치처분을 하지 못하도록 경과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씨의 경우 그 같은 시효가 적용될 사안이 아니라는 이유다.
재판부는 "이 사건 위반행위는 2013년 1월 2일부터 2017년 9월 30일까지 계속·반복적으로 행해졌다"라며 "이같이 이 사건 위반행위가 영업을 위해 계속·반복적으로 행해진 일련의 행위인 이상, 그 처분시효의 기산점은 그 최종적인 행위 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의 입장이다.
이어 재판부는 "최종행위시가 2017년 9월 30일인 이 사건 위반행위는 장관의 의사면서 자격정지 처분 당시인 2022년 6월 8일을 기준으로 아직 5년의 시효기간이 경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이씨는 장관의 처분이 너무 지나쳐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한 경우와 비교할 때 기본적으로 병원을 개설·운영할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게 고용돼 진료를 한 경우 위법성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고 강조했다. 즉 공익침해의 정도는 경미한 반면 자신이 입게 되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먼저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 사건과 같은 제재적 행정처분의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 "처분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과 위반의 정도, 처분에 의해 달성하려는 공익상의 필요와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 및 이에 따르는 여러 사정 등을 객관적으로 심리해 공익침해의 정도와 처분으로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교량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적용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처럼 처분의 기준이 있는 경우에 대해 "처분기준에 부합한다 해서 곧바로 처분이 적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처분기준이 그 자체로 헌법 또는 법률에 합치되지 않거나 그 기준을 적용한 결과가 처분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 및 관계 법령의 규정과 취지에 비춰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섣불리 그 기준에 따른 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했다거나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대법원 입장에 따라 재판부는 복지부 장관의 이씨에 대한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은 의료법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른 처분인 점 ▲의료인의 의료기관 중복개설을 금지하는 규정의 취지는 의료인으로 하여금 하나의 의료기관에서 책임 있는 의료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의료행위의 질을 유지하고, 지나친 영리추구로 인한 의료의 공공성 훼손 및 의료서비스 수급의 불균형을 방지하며, 소수의 의료인에 의한 의료시장의 독과점 및 의료시장의 양극화를 방지하는 것인데 이씨가 박씨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함으로써 위와 같은 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된 점 ▲전문자격에 대한 징계는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직업윤리를 다하도록 하고 직무의 공정성 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 바, 이 사건 처분으로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과 비교해 이를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작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이씨가 4년 9개월 정도 박씨에게 고용돼 근무한 점 등에 비춰 볼 때 그 위법성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복지부 장관은 이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점을 감안해 처분기준에서 2분의 1을 감경한 이 사건 처분을 한 점 등을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