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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섭의 속터뷰]'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 "자식 같은 회사…삼성전자 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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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역사]① 대한민국 1호 반도체 회사 한국반도체 설립
그가 한국에 처음 이식한 C-MOS는 최신 기술
"삼성, 지분 10%주겠다는 약속 안 지켜" 주장

[아시아경제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지난 17일 오후 5시 20분, 인천공항 제1터미널. 등산화를 신고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한 노인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환영 나온 일행을 보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국의 '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였다. 친인척과 지인 등 20여 명이 ‘환영 반도체 과학자 강기동 박사’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그를 맞이했다.


꽃다발 증정 등 간단한 환영식이 끝난 뒤 공항 1층 한 커피숍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89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악수하는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기억은 명료했다. 마침 50년 전(1973년 1월 17일) 이날은 그가 미국 써니베일 집에서 반도체 사업 계획을 만든 날이었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역사는 1974년 1월 26일,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주식회사(이하 한국반도체)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된다. (공장이 준공된 것은 그해 10월 4일이다) 이 회사의 설립자가 강기동 박사다.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은 자서전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고려원.1996)에서 “반도체의 미개지(未開地)에 최초의 본격적인 반도체공장을 설립한 것이 강기동 박사의 한국반도체였다”고 기록했다.


대한민국 1호 반도체회사를 세운 강 박사는 ‘한국 반도체의 선구자’ ‘반도체의 씨를 뿌린 사람’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한국 반도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관련기사▶ 한국의 '반도체 선구자' 강기동은 누구인가



[소종섭의 속터뷰]'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 "자식 같은 회사…삼성전자 잘돼야" 한국반도체 사장과 삼성반도체 사장을 지낸 '한국의 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가 1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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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후 5년 만의 귀국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미국 네바다주 리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강 박사는 1남 1녀를 두고 있고 아내 김순호씨는 2018년 세상을 떠났다) 핸드폰이 있지만 잘 쓰지 않고 연락할 사람도 없으니 있으나 마나입니다.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강기동은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절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반도체는 파산한 적이 없습니다. 경영을 잘못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주주가 위장 부도를 내기로 하고 삼성에 인수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미국으로 돌아와 30년을 한국과 인연을 끊고 살아왔습니다. 1974년 당시 내가 한국에 가져온 기술은 현재 세계 표준으로 사용되는 반도체 최고의 제조 기술이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을 세계 2위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남아 있는 삶 전부를 바칠 각오입니다. 2월 중순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반도체 옛 공장을 가보고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도 방문하는 등 여러 일정이 계획돼 있습니다.


(경기고,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강 박사는 1958년 유학을 떠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반도체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반도체연구소를 책임졌다. 1962년 당시 반도체 선두주자였던 모토로라에 입사해 반도체 최전선에서 최신 기술을 익혔다. 1969년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튜어트 워너 사로 옮겼고 1974년 미국 선밸리에 ICII(Integrated Circuit International, Inc)사,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를 동시에 설립했다.)


미국에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왜 불모지였던 한국에 반도체 회사를 세우셨습니까?

아버지 때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비행기표가 비싼 편이었는데 그걸 사주셨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반도체를 연구하고 국방성과 큰 프로젝트를 하고 모토로라에서 근무하다 보니 반도체와 관련해 굉장한 양의 지식을 쌓았습니다. 그 지식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레벨이 높은 지식이었습니다. 그걸 갖고 한국에 가면 세상이 놀라지 않겠습니까. 정말 히트하겠다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은 반도체가 군사 기밀과 관계가 있었기에 미국 국방성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강 박사는 국방성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했기에 기술 유출 등과 관련해 주목받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첫 작품으로 시계칩을 만든 것입니다. 당시 내가 한국에 가져온 C-MOS(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상보성 금속산화물 반도체) 기술을 인텔이 따라오는데 20년 격차가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최신 기술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도는 어떠했는지요?

저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회사에서도 지원해주고 하니 그저 좋아서 했던 것이지요. 다른 회사에서 무엇을 하는지, 경쟁 회사들의 상황은 어떤지에 대한 관심과 개념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한 것이기에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콘퍼런스에 가서 다른 이들이 발표하거나 질문하는 것을 보면 수준이 보입니다. 그렇게 제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그렇군요. 한국반도체 설립 당시 한국에서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저는 반도체 프로젝트를 가져오면 대환영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업 허가가 나기까지 신청하고 거의 1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올 때 나는 기술 쪽만 담당하고 경영은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사위인 이훈 씨가 하는 걸로 알고 왔는데 그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관련 부처 등을 직접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반도체 케이스 관련 품목(assembly 용 header)을 반도체 사업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반도체협회 모임에 가서 ‘당신들이 하는 일은 진짜 반도체가 아니다’라고 했다가 ‘젊은 놈이 뭘 안다고~’라고 크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관련 교수들도 대부분 반도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소종섭의 속터뷰]'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 "자식 같은 회사…삼성전자 잘돼야" 강기동 박사가 전직 한국반도체 임직원과 가족 등 인천공항에 환영 나온 인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한국반도체와 미국 ICII사의 지분 구조는 어떻게 돼 있었나요?

ICII사 지분은 강기동 50%, 서더스 50%였습니다. 서더스 지분은 사실 한국반도체 투자자였던 김규한 씨의 돈이었습니다. 군 통신망 사업을 했던 김규한 씨의 파트너가 서더스였습니다. 김규한 씨가 받은 커미션을 서더스가 관리한 것입니다. 한국반도체는 ICII사와 한국 회사가 5:5로 합작해 1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한국 회사는 처음에는 김규한 씨의 켐코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와인 사업 등을 하던 이상규 씨 지분이 더 컸습니다. 자금에 문제가 생기면서 어떻게든 반도체 사업을 해야 했기에 내 지분 50%가 넘어간 것입니다. 당시 조건은 전량 수출, 양산 성공 시 반도체 지분 10%를 주는 것으로 새롭게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저는 오로지 시계칩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는 지분 같은 것보다 오로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한국반도체 설립이나 지분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금전적으로 이득을 본 것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는 ICII에서 월급만 받았습니다. 삼성이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의 돈의 흐름 등은 모릅니다. 그건 제 손을 떠난 일이었습니다.


삼성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병철 이건희 전 회장을 만나셨나요?

이건희 회장은 만난 적이 없고 이병철 회장은 몇 차례 만났지만, 비즈니스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회사가 삼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삼성 측에서 지분 10%를 주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안 지켰다고요?

당시 나는 회사가 삼성에 팔려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도난다는 얘기가 있어서 김규한씨에게 물어보니 ‘절대로 부도날 게 아니다’라고 했어요. 100만 달러 가지고 회사를 시작했지만 200만 달러 정도가 더 필요했습니다. 어렵게 차관을 신청해 100만 달러가 나와 입금됐는데 얼마 안 있어 회사가 삼성에 5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10%’ 얘기는 한국 측 대주주가 그렇게 말했고 계약서에도 있습니다. 양산해야 하고 전량 수출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사인하라고 해서 항복문서에 사인하는 기분으로 문서를 보지도 않고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사본을 주겠지 했는데 안 줬습니다. 아마 삼성은 갖고 있을 것입니다.


말씀대로라면 계약서에 ‘10%’ 얘기가 없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보지 않았으니 안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서에 사인한 이후 삼성은 나를 주주로 대우했습니다. ‘주주님은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식이었어요. 강진구 전 회장을 찾아가 ‘10%에 해당하는 돈을 달라’고 했을 때도 ‘삼성이 안 주겠냐.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삼성반도체 사직 이후 삼성 측에 여러 차례 편지도 보냈지만 한 번도 답을 받지 못했어요. 아직도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30년사>는 삼성의 한국반도체 인수와 관련해 이렇게 기록했다. '한국반도체는 본격적인 생산체제를 구축하면서 과다한 투자 때문에 경영이 극도로 악화됐다. 제품 생산이 계획보다 늦어져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공장 준공과 함께 제품개발이 본격화됨에 따라 계속적인 투자가 요구됨으로써 자금압박이 가중됐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장래성을 내다보고 개인자금으로 한국반도체의 한국 측 투자 지분을 50% 인수했다. 당시 삼성전기나 삼성전관 등이 고전하고 있을 때라 그룹 차원에서 또다시 전자 사업에 투자할 여력도 없었고 명분도 없었다. 게다가 비서실에서는 한국반도체가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룹 차원에서 한국반도체 인수가 쉽지 않음을 안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이다.')


[소종섭의 속터뷰]'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 "자식 같은 회사…삼성전자 잘돼야" 강기동 박사는 2월 중순까지 한국에 머물며 서울대 전기공학과 등을 방문하는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자신이 세운 대한민국 1호 반도체회사가 삼성에 넘어갔으니 아쉬움이 컸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정도가 아닙니다. 인생이 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평생 키운 회사가 나도 모르게 삼성에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내 꿈이 있어서 인수한 회사인 삼성반도체 사장을 맡아 2년 동안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금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삼성전자가 잘돼야 합니다. 내게는 자식 같은 것인데…. 더 잘돼야 합니다.



(오일쇼크를 겪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반도체의 첫 제품인 시계칩은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삼성에 인수된 2년 후 강 박사가 회사를 떠날 당시 수출 실적은 418만 달러였다. 64K-DRAM도 이곳에서 처음 제조됐다. 삼성은 1977년 12월 30일 ICII가 갖고 있던 한국반도체의 나머지 지분 50%를 인수해 1978년 3월 삼성반도체를 출범시켰다. 1980년 1월 1일 삼성반도체는 삼성전자에 합병돼 오늘에 이른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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