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주 4일 근무제 실험 기간 중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평균 38% 증가했고, 참가 기업들은 이 경험에 대해 10점 만점에 9점을 줬습니다. 직원 10명 중 7명은 다시 40시간 근무제로 돌아가려면 10~50%의 급여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했어요."
세계 곳곳에서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글로벌은 지난달 말 일부 회사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미국과 아일랜드, 호주 등에 있는 기업 33개의 직원 969명이 참가해 6개월간 진행한 실험이었는데요. 핵심은 근무시간을 기존의 80%로 줄여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되 급여와 생산성은 100%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큰 성공을 거뒀다" 포데이위크글로벌은 실험 조건을 유지하며 생산성과 직원 만족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이번 실험이 성공했다고 자평했어요. 매번 주 4일 근무제 실험이 이뤄지면 발표의 첫 문장에는 생산성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MS) 재팬이 비슷한 실험을 마치고 '직원 1인당 매출이 40% 증가했다, 비용이 줄었다'는 점을 앞세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근무시간의 변화는 기업 경영과 임·직원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요.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검토한다면 생산성 향상, 직원 만족도 증가라는 결과 뿐 아니라 실험 과정 속에 녹아들어있는 요소들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될 겁니다.
1) 실험 참가자는 대부분 소기업…대기업도 적용 가능?
이번 실험 참가 대상 기업 33곳의 특성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이들 기업의 절반 이상인 17곳은 10명 이내의 소기업입니다. 10~100명 기업도 4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죠. 실험 대상 기업 중 직원 수가 100명이 넘어가는 기업은 단 두 곳에 불과합니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된 실험이라는 겁니다.
실험에 참가한 아일랜드 기업 렌트어리크루터(직원수 24명)의 배리 프로스트 창업자는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인재를 확보하려 할 때 우리와 같은 중소기업에 '경쟁우위'를 제공한다"면서 주 4일 근무제 도입이 차별화 요소가 됐다고 했습니다. 소기업의 경우 인재 경쟁에서 주 4일 근무제를 일종의 복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근무제도 변화는 소통이나 회사 내 업무의 다양성 등을 감안할 때 기업 규모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이러한 점을 감안해 포위크글로벌은 내년에 직원수 1000~3만5000명 규모의 회사들과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현재 협의 중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4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비슷한 실험을 먼저 사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업이 있는데요. 도브와 바셀린을 만드는 회사인 유니레버입니다. 유니레버는 지난달 뉴질랜드 지사에서 하던 실험을 호주로 확대 적용키로 했는데요. 뉴질랜드 직원 수가 81명에 불과했다면 호주에서 실험에 참여하는 직원 수는 500명에 달합니다. 실험 규모가 커진 것이죠. 기존에 소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진 이 실험이 대기업에도 잘 정착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2) 어디서 시간 가장 줄였나
그렇다면 근무시간을 줄이는 이번 실험에서 기업들은 무엇을 가장 많이 손봤을까요? 바로 회의입니다. 지난 9월 블룸버그통신은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스티븐 로젤버그 교수가 20개 업종 직원 632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인용해 직원들이 평균 주당 18시간을 회의에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 있는데요. 연구팀은 이로 인해 1인당 연간 2만5000달러(약 3300만원), 직원 5000명 이상인 미국 기업의 경우 연간 1억100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산한 적 있습니다.
이번 주 4일 근무제 실험 결과 보고서를 쓴 줄리엣 쇼어 보스턴대 교수는 보스턴대 매거진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근무시간 단축에 있어) 가치가 없는 활동을 줄이는 업무 개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업무 개편이 되는 핵심 대상은 바로 회의"라고 말했습니다. 회의가 너무 길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슬랙이나 메시징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으로 업무 개편이 이뤄진다는 것이죠.
3) "준비 작업만 6개월"…계획이 중요하다
실험에 참가한 기업들은 도입하기 전 준비·계획 단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9월 포데이위크글로벌이 내놓은 영국의 주 4일 근무제 실험 중간 평가를 보면 기업 5곳 중 1곳은 중도에 실험을 포기했습니다. 대부분 계획 단계에서 중단했는데요. 업무 방식을 개편하기 위해 검토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죠.
조 오코너 포데이위크글로벌 CEO는 "계획 단계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 짓는다"면서 직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꼼꼼한 CEO라 할지라도 매일 모든 직원들이 겪는 복잡한 사항들을 다 알 수는 없다"고 말이죠.
실험 참가 기업인 영국 환경 컨설팅업체 타일러그레인지의 사이먼 우르셀 상무는 최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파일럿 시작 전 수개월간의 준비가 핵심이었다"고 말했고요. 영국 런던에 본사가 있는 게임 개발업체 허치의 경우 이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경영진이 140개 이상의 익명 질문을 받고 이에 공개적으로 답했으며, 각 팀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허치 경영진들은 주 4일 근무제 도입에만 6개월이 걸렸다고 농담을 한다고 한 외신은 전했어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실험이다."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한 행사에 나와 경영진에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말했는데요. 실험 결과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현실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코로나19 이후 트렌드가 급변하는 시기인 만큼 이번 주 4일 근무제 실험이 미래 근무 형태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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