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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의 酒저리]'한반도 배꼽' 평택서 우리 술의 중심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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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 평택 '호랑이배꼽 양조장'①

[구은모의 酒저리]'한반도 배꼽' 평택서 우리 술의 중심을 꿈꾸다 경기 평택 '호랑이배꼽 양조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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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일찍이 우리나라는 호랑이 이야기가 많다 하여 ‘호담국(虎談國)’이라 불렸다. 친일로 변절하기 전 육당 최남선 역시 조선은 범 이야기만으로 ‘천일야화’나 ‘데카메론’ 같은 책을 꾸미고도 남을 정도라고 평했다. 그만큼 이 땅에서 호랑이는 친근한 영물로 때로는 경외의 대상으로 다양한 설화와 민담, 지명을 통해 우리 역사와 삶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서양화가, 우리 술에 뛰어들다… 와인 주조 기법으로 만든 막걸리

‘호랑이배꼽 양조장’도 수많은 호랑이 이야기 가운데 하나에서 시작됐다. 비상하는 호랑이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한반도 지도를 살펴보면 그 배꼽 자리에 있는 곳이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이다. 이곳에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배꼽처럼 우리 술의 과거와 현재를 잇겠다는 다짐과 한국 막걸리의 중심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서양화가 이계송 화백이 2008년 문을 연 곳이 바로 호랑이배꼽 양조장이다.


설립자인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는 이혜인 대표는 “호랑이배꼽은 평택이라는 지역성을 내보일 수 있는 이름인 동시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가장 잘 담은 이름”이라며 “선조 때부터 이곳을 한반도 중심 자리로 여기고 살아왔던 만큼 양조장 이름도 자연스레 호랑이배꼽이 됐다”고 말했다. 양조장의 대표 막걸리 이름이 ‘호랑이배꼽’인 건 당연한 일이다.


[구은모의 酒저리]'한반도 배꼽' 평택서 우리 술의 중심을 꿈꾸다 이혜인 호랑이배꼽 양조장 대표.

서양화가인 이 화백은 일찍이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술과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경험했다. 그런 그에게 프랑스 생활은 하나의 전기(轉機)가 됐다. 그곳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지켜본 농촌은 농업을 통해 지역성이 뚜렷한 와인 등으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는 곳이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지역성 가득한 우리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함평 이씨가 600년간 거주한 집성촌이자 자신이 나고 자란 포승에 양조장을 세우고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방앗간을 운영하셨던 데다 어머니가 깨진 쌀과 부산물로 막걸리 빚으시는 걸 지켜보며 살아온 터라 쌀은 다루기 낯선 재료도 아니었다. 지역농산물 소비 확대를 위해 시행된 지역 특산주 제도를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양조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던 점도 도전에 힘을 실어줬다.


[구은모의 酒저리]'한반도 배꼽' 평택서 우리 술의 중심을 꿈꾸다 호랑이배꼽 양조장 전경.

늘 먹고 마시던 익숙한 재료가 쌀이라지만 평생 그림만 그려온 그에게 쌀을 술로 바꿔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교육기관도 마땅치 않았고 지금처럼 인터넷에 관련 자료가 많지도 않았다. 쉽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시장에 비슷비슷한 술을 하나 더 던져주는 데 그치고 싶지 않다는 목표만은 확고했다. 그는 벌컥벌컥 시원하게 마시는 막걸리도 좋지만 와인처럼 느긋하게 음미할 수 있는 막걸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일반적인 막걸리 주조방식이 아닌 와인 주조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생쌀을 껍질째 사용하는 방식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 이혜인 대표는 “남들은 창업지원금을 받으면 주로 설비에 투자하는데, 아버지는 그 돈으로 대부분 원재료를 구입하셨다”며 “그만큼 많은 쌀로 다양하게 술을 빚으며 연구하셨다”고 되새겼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2009년 세상에 나온 술이 ‘호랑이배꼽 막걸리’다.


가벼운 질감에 산뜻한 맛… 가장 평택다운 것이 목표
[구은모의 酒저리]'한반도 배꼽' 평택서 우리 술의 중심을 꿈꾸다 호랑이배꼽 양조장의 '호랑이배꼽' 막걸리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걸쭉하고 텁텁한 일반적인 막걸리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막걸리다. 묵직하기보다는 가벼운 질감에, 쌀로 빚은 술임에도 사과와 배 같은 과일향이 가득해 전반적으로 산뜻하고 개운한 인상이다. 또 탄산이 적어 목 넘김이 편안하고 한 눈에 보더라도 빛깔 역시 다소 옅다.


양조가의 취향과 의도가 진하게 배어있어서일까. 호랑이배꼽 막걸리도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건 아니다. 일반적인 막걸리의 특징과 상반되는 점이 많다 보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 역시 많았다. 하지만 우직하게 자신들의 맛과 정성이 담긴 막걸리를 빚어내다보니 어느새 멀리서도 그 맛이 궁금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이혜인 대표는 “저희는 그대로인데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한 것 같다”며 “새로운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조금은 다른 저희 막걸리를 찾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구은모의 酒저리]'한반도 배꼽' 평택서 우리 술의 중심을 꿈꾸다 호랑이배꼽 양조장 전경.

그렇게 이곳 술맛이 사람들 입맛에 조금씩 배어드는 동안 술 빚는 손도 아버지에서 딸에게로 자연스레 넘어왔다.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사진가로 일하던 둘째 딸 혜인 씨는 시간 날 때 들러 아버지를 돕던 일이 언제부터인가 본업이 돼 있었다. 몇 년 전부터는 아버지를 이어 대표 자리도 맡고 있고, 지금은 디자이너 일을 하던 언니 혜범 씨도 합류해 양조를 비롯해 대부분의 일을 자매가 함께 맡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돌아보면 아버지 곁에서 술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처음 사진을 배울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암실에서 흑백사진부터 배우는데, 아무것도 없던 종이가 약품 안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이미지가 덧입혀져 나오는 게 그렇게나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제는 술이 그렇다. 그는 “발효되는 술을 바라보고 있으면 혼자 귀신들린 것 마냥 방울이 올라오기도 하고 회오리가 치기도 한다”며 “쌀이란 재료가 술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신비한 모습이 이곳으로 이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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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호랑이배꼽 막걸리가 평택이란 지역의 가치를 보여주는 상품이 되길 바랐다. 이 대표와 그의 가족들에게 평택은 산 좋고 물 맑은 만족스런 삶의 터전이었지만 외부에서 스치듯 바라본 평택은 어두운 곳이었다. 그는 “평택은 너른 평야부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곳”이라며 “평택 땅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로 평택의 바람과 물로 가장 평택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앞으로도 지켜갈 목표”라고 말을 맺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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