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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중력에 붙들린 이들의 눈부신 탈출기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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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씨네 삼 남매는 경기도 남쪽 끝에 산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그들은 아침마다 띄엄띄엄 오는 마을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뛴다.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향해도 하늘이 어둑해진다.


어쩌다 모임이라도 갖게 되면 혹시라도 지하철 막차가 끊길까 서둘러 일어나야 한다. "밝을 때 퇴근했는데, 밤이야." 첫째 말대로 그들의 하루는 집과 회사 그리고 길 위에 고스란히 바쳐진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내일도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토록 지지부진한 삶,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삶의 주변부에서 늘 쳇바퀴 같은 나날을 보내던 염씨 일가 세 남매가 각자의 방식으로 탈출을 꿈꾸는 이야기다. 한때 ‘섹스 앤 더 시티’의 화려한 삶을 꿈꿨으나 현실에 치여 "빠르게 늙어가던" 첫째 기정(이엘)은 열렬한 사랑을 다짐하고, 성실한 직장인으로 착실히 승진하는 삶이 정답인 줄 알았던 둘째 창희(이민기)는 회사 바깥에서 답을 찾기로 한다. "모든 관계가 노동"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지쳐 있던 셋째 미정(김지원)의 삶도 바뀐다.


[톺아보기] 중력에 붙들린 이들의 눈부신 탈출기 ‘나의 해방일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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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회사에서 비슷한 성향의 동료들과 함께 작은 동호회를 만들고, 마을의 이방인 구씨(손석구)와 서로를 ‘추앙’하며 공허한 삶을 채우는 관계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변화가 일견 대단한 구원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드라마 속 주인공의 ‘터닝 포인트’가 굉장히 극적인 사건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해, 이 작품 속 인물들의 구원은 평범한 일상에 가까워 보인다. 미정의 동호회 ‘해방클럽’이 거창한 명칭과 달리, 소심한 사람들의 소모임 정도로 느껴지듯.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


지지부진한 인생을 단숨에 바꾸는 기적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나의 해방일지’는 극적인 터닝 포인트를 그리는 대신 일상에 "자잘하게 쪼개져" 있는 소소한 행복의 합이야말로 구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테면 이런 순간들이다. 미정이 출근길 전철에서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구씨에게 메시지를 보낸 순간, 하루의 작업을 마친 구씨가 퇴근하는 미정을 기다려 밥을 먹고 길을 걷는 순간, 기정과 만난 뒤 문득 하늘을 쳐다본 태훈(이기우)이 무지개와 마주한 그런 순간들.


‘나의 해방일지’는 이처럼 진부한 일상을 뒤집어 그 뒤에 숨어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눈이 부시게’ 표현한다. 현실에 대한 사실주의적 묘사로 호평을 얻으면서도, 그 햇살 같은 순간들을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판타지적 연출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추앙 점프’로 불리는 4회 엔딩 신이다. 밭에서 일하다 쉬던 미정의 모자가 바람에 밀려 길 저편으로 날아간다. 당황한 미정 앞에서 구씨가 놀라운 점프력으로 길을 뛰어넘어 모자를 가져다준다. ‘추앙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것’이라는 미정의 말에 화답하는 순간이다.


드라마는 점프하는 구씨를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처럼 묘사한다. 인물들을 고인물처럼 살아가게 한 삶의 중력을 응원의 힘으로 초월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불가능한 기적을 기다리는 대신, 반대로 일상을 마법처럼 살아보는 건 어떠냐고 묻는다. 그 자체로 ‘오늘 당신에게 일어날 좋은 일’ 같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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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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