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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어느쪽이든 생존이 던진 ‘미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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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행복에 관한 불편한 진실
행복 기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최종 결과물은 생존과 번식
행복의 절반은 유전, 환경 대신 성격과 태도 바꿔야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어느쪽이든 생존이 던진 ‘미끼’입니다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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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수 천 명을 학살한 적이 있는 독재자다. 그는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국외로 빼돌린 후 천혜의 휴양지에서 가족과 함께 풍요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평생 가난을 벗 삼아 수행하면서 ‘무소유의 성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대도시의 하수구에 머물며 아침마다 병든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설파하고 있다. 독재자와 무소유의 성자 중 누가 더 행복해 보이는가?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어느쪽이든 생존이 던진 ‘미끼’입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두 시선

삶의 의미를 묻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철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설파해왔다. 하지만 행복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은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로 뚜렷이 나뉜다. 금욕주의자는 행복을 삶의 완성으로 본다. 이때 행복은 이성, 도덕, 깨달음 같은 것에 의해 지탱된다. 행복은 개관적 상태일 뿐 아니라 도덕적 행위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 완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 쾌락주의자는 행복이 주관적 경험이 만든 허구이며, 인간은 도덕적 행위와 관계없이 쾌락을 쫓고 고통을 피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행복은 욕망의 충족을 통해 획득된다.


첫 번째 관점은 오랜 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금욕주의자에게 행복이란 욕망할 것이 없는 상태이거나 욕망하지 않는 상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욕망은 불행의 저수지다. 욕망하는 존재는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진정한 행복에 이르려면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 자신의 내면, 즉 정신적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라는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대부분 쾌락주의적 관점을 지지한다. 쾌락주의자가 보기에 행복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했을 때 뇌가 선사하는 생화학적 보상일 뿐이다. 뇌야말로 진정한 성감대다.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면 누구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정신적 초월도 체험할 수 있다. 단지 사라들은 뇌가 느끼는 쾌감을 정신적 초월에 의한 황홀경으로 착각할 뿐이다.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어느쪽이든 생존이 던진 ‘미끼’입니다

행복은 미끼다

이제 행복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말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사랑하는 것, 성공을 위해 노력하거나 명예를 얻으려 애쓰는 것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여 얻는 최종 결과물은 생존과 번식이다. 예컨대 사랑의 감정은 아름답고 숭고하지만, 궁극의 결과물은 당신의 유전자 50%를 가진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을 좇는 인간을 꿀벌에 비유한 바 있다. 꿀벌이 노리는 것은 꽃이 아니며, 꽃 역시 꿀벌에게 꿀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꿀벌과 꽃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꿀벌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꽃을 찾듯이 인간은 행복을 좇는다.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당나귀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당근과 같다. 당나귀가 당근을 쫓다 보면 자연스레 주인이 의도하는 길로 가듯이, 우리가 행복을 좇다 보면 저절로 유전자가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행복을 좇음으로써 자연스레 자연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은 쾌감을 좇고 고통을 피하도록 진화했다. 불행을 좇기보다 행복을 좇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길과 불리한 길을 알려주는 교통 신호등 역할을 한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의 목적은 같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살아남지만, 불행을 추구하는 사람은 유전자를 남길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의 행복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진화의 목적 또한 행복이 아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끝까지 살아남아 번성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쾌락과 고통이라는 두 군주의 지배 아래 있다는 제러미 벤담의 통찰은 옳다. 쇼펜하우어 역시 일찍이 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개체에게 환상을 심어주어 기만할 수밖에 없다. 개체는 이 환상에 미혹되어 진짜 목적이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인데도 자신의 행복으로 오인하여…, 자연의 노예가 되고 만다.” 자연은 우리에게 매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단순한 지침만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당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면 행복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생물학적 숙명에 따라 움직인다.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어느쪽이든 생존이 던진 ‘미끼’입니다

행복의 절반은 유전자에 달려 있다

행복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어떤 이는 별다른 노력 없이 행복을 누리고, 어떤 이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불행하다. 그렇다면 행복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일까?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켄(David Lykken)은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태어난 수천 쌍의 쌍둥이를 수십 년간 추적 연구한 끝에 행복의 50% 정도는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키를 키우려는 노력만큼이나 헛된 일이다.” 이후 유사한 연구 결과들이 계속 쏟아졌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전적 요인 50%, 환경 조건 10%, 의도적인 활동이나 노력이 40% 정도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많다. 2017년에는 200여 명으로 구성된 17개국 공동연구팀이 수십만 명의 DNA를 분석하여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변이 3개를 찾아냈다. 우울증과 신경증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변이도 각각 2개와 11개를 찾아냈다. 이들 유전자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 이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5-HTT(5-hydroxytriptamin transporter) 유전자 변이와 FAAH(Fatty acid amide hydrolase) 유전자 변이다. 5-HTT 유전자는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세로토닌 분비와 깊은 관련이 있고, FAAH 유전자는 ‘뇌 속의 마리화나’라 불리는 아난다미드 분비와 관련이 있다. 행복유전자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아시아인이 가장 적게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이 흥이 많고,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2018년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감각적 쾌락과 정신적 행복의 30~64%가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 또 남성과 여성의 정신적 행복수준은 비슷하지만, 감각적 쾌락은 남성이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적 행복만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주장은 지적 허세에 불과하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두 가지 길이 모두 어렵다. 욕망은 영원히 성취할 수 없고, 욕망을 줄이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일찍이 니체는 “인간이 쉽사리 신이라고 자처하지 못하는 것은 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동물의 본능을 가진 존재다. 정신적 만족은 행복의 한쪽 면일 뿐이다. 나머지 한쪽 면은 욕망을 통해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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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절반을 유전자가 결정한다면 행복을 얻기 노력은 별반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전자 자체라기보다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그 사람의 성격과 태도다. 행복의 10%에 영향을 미치는 지위, 소득, 교육 같은 환경조건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도 미련한 짓이다. 부모는 바꿀 수 없고, 출신 국가나 학교를 바꾸기도 어렵다. 설령 바꾼다고 해도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는 나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수많은 현자들이 가르침을 주었듯이,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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