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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어쩌란 말이냐 떨어져 살 수 없는 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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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무의 특별한 생존방식-연리(連理)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어쩌란 말이냐 떨어져 살 수 없는 이 마음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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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억년 전에 지구가 만들어지고, 10억년의 적막을 깨고 지구에는 생명이 탄생했다. 그로부터 사람으로서는 체감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생명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다. 새로운 형태의 생명이 태어나는가 하면 활발하게 활동하던 어떤 생명은 가뭇없이 스러지기도 했다. 이 모든 생명의 변화와 다양화의 과정을 우리는 ‘진화’라고 이야기한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생명의 진화 과정을 지배하는 원리를 일곱 가지로 이야기한다. 집단의 변이, 지속성, 강화, 경쟁, 협동, 조합적 풍부, 반복이 그것이다. 이 원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상호작용하며 이른 것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생명의 다양성이다.


스스로 살 자리 못 정하는 나무
경쟁 못지않게 협동도 진화 방식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어쩌란 말이냐 떨어져 살 수 없는 이 마음을 영덕 괴시리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팽나무와 소나무 가지의 연리지.

각박한 사람살이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진화의 원리는 무엇보다 ‘경쟁’의 원리다. 우리의 살림살이가 그렇고, 나무 역시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과의 혹심한 경쟁을 통해 살아간다. 생명체들이 제가끔 ‘이기주의적’으로 여겨지는 건 바로 ‘경쟁’의 원리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 못지 않게 중요한 진화의 원리가 ‘협동’이다. 자연은 협동하는 생명체에게 반드시 보상을 준다.


나무는 스스로의 삶이 위태로워질 만큼의 극심한 경쟁을 치러야 할 사정에 부닥치면 경쟁 체제를 버리고 협동 체제로 전환해 놀라운 보상을 얻어내는 지혜로운 생명체다.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나무의 살림살이를 잘 살펴보면 치밀할 정도로 슬기로운 그들의 생존전략이 드러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나무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자신에게 맞춤한 공간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상실한 ‘거리두기’가 얼마나 혹독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거치며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세계에서 당장에 거리두기가 다른 요소보다 절박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 게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그러나 그건 2m도 채 안되는 크기로, 고작해야 백년도 못 사는 사람의 경우다. 잘 자라면 사람의 열다섯 배를 넘는 30m 이상까지 훌쩍 자라는 천년의 나무는 사정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무에게는 가지를 펼칠 공간이 필요하고, 또 햇살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열린 공간도 필요하다. 나무 사이의 거리는 동물의 거리두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 스스로 자리를 옮겨가며 제 살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나무들은 최소한의 생명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스러지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너른 들판에 홀로 우뚝 선 은행나무나 느티나무가 천년 넘게 장수하는 것과 달리 숲에서 빽빽이 모여 자라는 나무들의 수명이 대략 200년에서 300년에 불과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스스로 살 자리를 정하지 못하는 나무는 하릴없이 하늘이 점지한 자리에 붙박여 평생을 보내야 한다. 그 와중에 처음에 생각지 못한 경쟁자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곁에 자라는 나무가 서로의 생존을 훼방하지 않았으나 세월 흐르면서 차츰 곁의 나무는 나뭇가지를 펼칠 자리를 막는 훼방자가 되고, 나뭇잎 위로 그늘을 드리워 광합성조차 막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곁의 나무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재앙을 만나게 된다. 끝까지 이기주의적 경쟁만 벌인다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다. 나무는 경쟁 관계를 이루었던 곁의 나무와 함께 살 방법을 도모한다. 경쟁 체제에서 협동 체제로 옮겨가면서 보상을 얻고자 하는 생존 전략이다.


다른 나뭇가지가 이어진 연리지
줄기·뿌리가 붙은 연리목·연리근
종류가 다른 나무끼리 만나기도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어쩌란 말이냐 떨어져 살 수 없는 이 마음을 영주 읍내리 연리지 소나무는 줄기 아랫부분부터 접합돼 있어서 연리목이라 부르는 게 맞지만 오랫동안 연리지로 불려왔다.

나무가 협동을 이루는 매우 특별한 방식이 있다. 연리(連理)다. 연리란 곁에 있는 나무와 한 몸을 이루는 매우 독특한 협동 방식으로, 흔한 현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희귀한 현상도 아니다. 연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이야기한다. 연리지, 연리목, 연리근이다. 모두 나무가 가까이에 붙어서 자라면서 하나로 붙은 상태를 말한다. 연리근은 뿌리가, 연리목은 뿌리에서 땅으로 올라온 줄기가, 연리지는 나뭇가지가 하나로 붙어버리는 경우다.


눈으로 보기에 가장 신기한 현상은 아무래도 연리지라 할 수 있다. 별개로 자라던 나무의 나뭇가지가 만나서 그 근원을 구별할 수 없도록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룬 상태다. 볼수록 신비롭다. 연리목은 줄기가 붙어있는 경우로,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 아랫부분부터 완벽하게 하나로 붙어있는 경우를 말한다. 눈으로만 붙어있는 걸로 보이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하나의 조직으로 합쳐진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세밀하게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또 땅 속에서 복잡하게 뻗은 뿌리가 서로 붙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연리근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판단하기 어렵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어쩌란 말이냐 떨어져 살 수 없는 이 마음을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 부분이 한 몸을 이룬 일본 야쿠시마 사원의 삼나무 연리목.

연리목과 연리지는 그 신비로운 생김새를 놓고 갖가지 전설과 이야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두 나무가 한 몸을 이뤘다는 데에 비추어 두 연인이 한 몸을 이루는 과정, 즉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연리지를 사랑의 상징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풍자한 "장한가(長恨歌)"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연리지에 비유해서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은밀한 약속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한다네"라고 쓰기도 했다.


연리목과 연리지 곁에서 소원을 빈다든가, 불가의 탑돌이처럼 소원을 빌며 몇 바퀴를 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등의 이야기가 더불어 전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소원의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연리지를 이룬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며 협동 체제를 이룬 나무의 신비로운 현상을 바라보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압권
경북 영주 읍내리 소나무엔 용틀임
예로부터 사랑의 상징으로 표현
무한경쟁 사회에 아름다운 훈수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어쩌란 말이냐 떨어져 살 수 없는 이 마음을 800년 된 천연원시림인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에 서 있는 비자나무 연리목의 줄기 부분.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는 연리를 이룬 나무들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연리지 연리목이 있지만, 그 가운데 압권은 아무래도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안에 들어있는 비자나무 연리목이다. 수령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이 비자나무 연리목에는 ‘사랑나무’라는 별명이 붙었고, 여느 연리지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경북 영주시 읍내리의 순흥면사무소 경내에 서 있는 연리지 소나무도 빼놓을 수 없는 수려한 나무다. 200년 넘은 이 소나무는 두 개의 줄기가 용틀임하듯 솟구쳐 오르면서 하늘로 오르다가 허공에서 만나 한 몸을 이루는 신비를 갖췄다.


같은 종류의 나무끼리 연리 현상을 이루는 게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다른 종류의 나무가 연리지를 이루기도 한다. 일테면 경북 영덕군의 괴시리에는 팽나무와 소나무가 만나서 이룬 연리지가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른 종류의 나무가 연리지를 이루었을 경우에는 실제로 조직 자체가 이어진 것인지, 외부적인 형태로만 연리가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떤 형태가 됐든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가지를 펼치며 살아가야 하는 나무에게는 경쟁과 협동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생명 원리의 조화를 이루는 슬기로운 생명체다. 그게 이 땅에 오래도록 평화롭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나무의 생명 원리다.


무한경쟁의 사회. 더구나 상대를 물어뜯고, 끝내 죽여야만 직성이 풀리겠다는 투로 달려 드는 이기주의적 경쟁이 살 길인 것처럼 아웅다웅하는 이 즈음의 정치권 뉴스를 돌아보면, 협동의 전략으로 더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무의 살림살이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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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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