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묻지마 살인' 5주기 추모물결
"저는 여전히 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냥 단순 사건 아니냐" 비판 의견도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여혐 범죄 끝내자!" , "그냥 단순 범행 아닌가요"
'강남역 살인사건'이 17일 5주기를 맞았지만 지금도 이 사건 성격은 논쟁적이다.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라는 비판이 있는 반면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라는 지적도 있다. 더 이상 페미니즘 논쟁을 만들지 말라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이 사건은 2016년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상가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가해자 30대 남성은 화장실에서 여성이 들어오길 기다리다 피해 여성이 안으로 들어오자 무차별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했다"고 말했고 검찰은 가해자에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2009년 조현병을 진단받은 기록을 참작해 심신미약 조항에 따라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이후 여성들 사이에서는 "나는 운좋게 살아남았다" 라며 누구든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길에서 죽임을 당할 수 있다며 집회가 열렸다.
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전날(17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9·10번 출구 사이에서는 '우리의 기억과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라는 이름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박주희 서울여성회의 회장은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였다는 것과 이를 계기로 여성들이 성차별 사회에 분노하고 행동하게 됐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함송화 서울여성회 영등포지부 집행위원은 "늦은 시간 밤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뉴스에서 여성혐오 범죄를 접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면서 "성차별이 구조화된 사회를 근본부터 개혁해야 한다"강조했다.
추모 현장에는 추모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메모지에 담긴 내용을 보면 '여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세상, 바꿔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등 이 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이며, 지금도 우리 사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다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을 규정하는 의견이 다르다. 여성들의 주장 그대로 '여혐 범죄'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단순 사건이라는 견해도 있다.
20대 여성 회사원 김 모씨는 "사건이 발생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늦은 밤 거리는 물론 대낮에도 여성들은 여성을 공격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묻지마 범죄'라는 말도 틀린 말이다. 여자만 공격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혐 범죄가 아닌 단순 범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30대 남성 직장인 이 모씨는 "가해자가 정신 병력이 있었고, 일종의 망상에서 비롯한 범죄 같다. 사건 자체가 너무 끔찍해서 여혐으로 볼 수 있으나, 엄밀하게 보면 그냥 조현병 환자가 저리는 범죄 같다"고 지적했다.
아예 성별 혐오 등 논란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2일 채널A 'MZ세대, 정치를 말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이수역 주점 폭행 사건'을 언급하면서 "강남역 시위나 이수역 사건 같은 단순 형사사건이 젠더프레임에 묻힌다"며 "여자라서 죽었다는 프레임으로 사회적 젠더프레임을 세운건데, 고유정씨가 전남편을 살해했다고 해서 남자라서 죽었다고 말하나"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함께 출연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사소한 것을 들고 일반적인 정책을 페미니즘이 지나쳤다고 일반화된 결론으로 내는 것은 이대남(20대 남성)들은 환호할지 모르겠지만 선동적 어법"이라며 "이준석이 계속 그러는 것은 당내 자기 입지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개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를 왜곡해서 해석하고 왜곡된 해법을 내가지고 젊은 세대를 선동하는 것은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성명을 내고 "5년 전 외쳤던 구호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에 분노한다"며 "성별을 이유로 한 죽음과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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