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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한국유사] 신라의 비밀병기는 印章…'권력'을 주고 '희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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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전쟁 승리로 이끈 전략

[이상훈의 한국유사] 신라의 비밀병기는 印章…'권력'을 주고 '희생'을 취했다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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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왜 전쟁 중에 인장(印章)을 배포했을까?


675년 정월, 신라는 백사(百司)와 주군(州郡)에 구리로 만든 인장(印章)을 배포했다. 때는 670년부터 본격화한 나당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기 직전이었다. 나당전쟁은 675년 9월 매소성 전투와 676년 11월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하면서 종결됐다. 675년 신라는 왜 전쟁과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구리 인장을 전국적으로 배포했던 걸까.


동양에서는 갑골(甲骨)이나 청동기에 문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재료를 구하거나 새기는 게 제한적이어서 주로 일부 상층부나 제사와 관련해 활용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재료가 나무로 대체됐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 즉 목간(木簡)이 사용되면서 지식과 정보 기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를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가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보기도 한다.


전근대시기에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 요소는 경제력과 군사력이었다. 국가의 정책은 법령에 따라 문서화했다. 세금 납부와 요역(繇役) 징발을 위해 문서행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서를 통한 법령 집행과 인력 동원에는 위험 부담이 따랐다. 문서가 하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조·위조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서의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종이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문서 행정에 목간이 사용됐다. 목간 문서의 보안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목간에 추가로 하나의 판을 덧대 묶는 게 검(檢)이다. 그 검에 진흙을 발라 봉한 후 인장까지 찍는 게 봉니(封泥)다.


발송용 목간은 검을 덧댄 후 끈으로 묶어 고정한다. 그 위에 봉니 인장까지 찍고 문서 수신처(署)를 쓴다. 검에 고착된 봉니가 파손됐다면 누군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서를 노출시킨 것으로 여겨졌다.


검과 봉니가 온전하다면 기본적으로 문서 수발 과정에서 문서 내용을 수정하거나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목간은 주로 평양 일대 낙랑(樂浪) 유적에서 발굴됐다. 중국 한(漢)나라 시기의 목간들이다. 여기서 다수의 목간과 봉니가 출토됐는데 봉니는 밀봉했던 목간을 개봉했을 때 떨어져 나온 것이다. 고대에 광범위하게 쓰이던 목간은 종이의 등장으로 종적을 감추게 된다.


[이상훈의 한국유사] 신라의 비밀병기는 印章…'권력'을 주고 '희생'을 취했다



나당전쟁 절정 치달을 때
신라 각 관청·주군에 배포
일반 실무에 쓰던 곱돌 아닌
구리 인장 나눠주며 '위계화'
중앙-지방행정 체계의 하나

격전지 매소성 전투 지휘는
대다수 지방관이 맡아
인장으로 일부 권한 위임
결전 앞두고 사기 고무 효과
중앙군 지원 기록은 없어

일반적으로 종이는 중국 전한(前漢)시기에 발명돼 후한(後漢)시기 채륜(蔡倫·?~121)이 개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종이는 삼베를 원료로 한 마지(麻紙)였다. 가볍고 편리한 종이의 발명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문서 생산량이 급증하고 전파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종이는 무겁고 불편한 목간을 빠르게 대체해 나갔다.


중국 한나라 이후 종이가 폭넓게 보급돼 문서 행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부피가 크고 번거로운 검은 점차 사라졌다. 따라서 봉니의 필요성도 없어졌다. 검과 봉니 대신 인장과 서명(署名)이 중요해졌다. 인장은 봉니 시대 음각(陰刻)에서 종이 시대 양각(陽刻)으로 변모하고 인주(印朱)를 뭍혀 종이에 직접 찍게 됐다. 문서 작성자를 나타내는 서명은 모방 방지 차원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중국 고대의 인장은 크게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으로 나뉜다. 관인은 다시 관부인(官府印)과 관명인(官名印)으로 구분된다. 인장의 외형은 자유분방해 고정된 형식이 없으며 재질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재질은 동(銅), 그 다음이 옥(玉)이다. 그 외에 은·유리·뼈·진흙도 사용됐다.


인장의 인면(印面) 모양은 정사각형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직사각형이다. 그 외에 원형·곡자형·삼각형·마름모형도 있다. 인장 상단부에는 뉴(?)라는 구멍을 만들었다. 그 사이로 실을 꿰어 허리에 맬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신화에 ‘천부인(天符印)’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남해왕 16년(서기 19년) 북명(北溟) 사람이 밭에서 일하다 ‘예왕지인(濊王之印)’을 주워 바쳤다고 기록돼 있다. 또 고구려 신대왕 원년(165년)에 차대왕(次大王)이 시해되자 좌보(左輔) 어지류(?支留)가 국왕의 동생에게 ‘국새(國璽)’를 바쳤다고 돼 있다.


신라의 수도 경주 안압지에서 목인(木印)이 발견되기도 했다. 천부인 등 다양한 인장 기록이 확인되고 있는데 그 실체를 떠나 삼국시대에 이르면 인장은 보편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나당전쟁이 한창일 때 신라는 각 관청 및 주군에 구리 인장을 나눠줬다. 문무왕 15년(675년)에 처음으로 신라에서 관인이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3세기 전반 진한(辰韓) 사회에 중국제 인장이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675년 구리 인장을 배포하기 전 이미 관청에서 사용하는 인장이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문서 행정이란 법령에 따라 문서로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고대의 행정 문서도 관료가 임의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법령에 따라 생산·폐기·보존되며 이런 과정 자체가 정기적으로 조사·통제됐다. 문서 행정에서 최종 확인 및 승인을 나타내는 인장의 관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경기도 양주의 대모산성(大母山城)에서는 곱돌 인장과 청동 인장이 함께 출토됐다. 곱돌은 활석(滑石)·액석(液石) 등으로 불리는데 연하고 미끄러운 성질을 갖고 있다. 곱돌 인장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실무용이었다. 청동 인장은 격이 높은 문서에 사용하던 고급 인장으로 파악된다. 신라가 지방 치소에 구리 인장을 새롭게 배포함으로써 고급 인장과 실무용 인장의 위계화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중앙과 지방 행정의 체계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사시 요청할 때는 반드시 문서로 하며, 구두로 요청하거나 대리로 요청하지 말 것." 중국 호북성 운몽현(雲夢縣) 진(秦)나라 묘지에서 발굴된 죽간(竹簡)에 기록된 문구다. 문서 행정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문서 행정에서 군사 관련 업무는 무엇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675년 신라의 구리 인장 배포 시기는 당과 결전을 앞둔 때였다. 이런 맥락에서 인장 배포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전시 체제에서 인장 수여는 각 기관장의 사기를 고무시키고 국왕의 권한을 공식적으로 일부 위임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전시 체제에서 각 기관장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급변하는 상황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672년 8월 석문 전투의 지휘관은 주로 진골 출신 장군들이었다. 하지만 나당의 결전장이었던 675년 9월 매소성 전투에 나타난 지휘관은 성주, 현령, 소수(少守) 같은 지방관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성이 함락되는 상황에서 신라 중앙군으로부터 지원군을 받았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사망한 지휘관이 모두 지방관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신라는 의도적으로 지방 성을 지원하지 않은 듯하다.


개별 지방 성의 입장에서는 신라 수뇌부의 행위가 잔인하게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당전쟁 전체 국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당군은 수백개의 신라 방어성을 일일이 공략하면서 남하해야 했다. 그리고 점령한 성들을 수비하기 위해 일부 병력은 남겨둬야 했다.


당군이 남하하면 할수록 보급로가 길어지고 공격 병력은 점차 줄게 마련이다. 신라는 이런 정황에 대해 파악하고 지구전을 감행했다. 대규모 전면전을 피하고 소모전으로 나섰다. 당군에 병참 문제를 야기시킨 것이다. 결국 신라의 방어 전략은 주효했다. 675년 매소성 전투 이후 당군은 한반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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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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