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올해 금융권의 인사 키워드는 '안정·디지털·슬림'으로 요약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언택트 기조가 확산되면서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이 지속되는 가운데 변화보다는 기존 경영진 유임 및 연임을 통해 힘을 실어주면서 안정에 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조직 슬림화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수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가운데 KB·신한·우리금융지주가 연말 인사를 완료했다.
지난 17일 가장 먼저 인사를 단행한 신한금융지주는 주요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대부분 연임 추천하면서 그룹 경영 안정에 힘을 실었다. 계열사 14곳 중 11곳의 대표이사 유임을 결정했다.
특히 그룹의 핵심 자회사 CEO인 신한은행 진옥동 은행장, 신한카드 임영진 사장, 신한생명 성대규 사장에게 2년의 새로운 임기와 함께 연임을 추천했다. 이들 CEO는 각 사가 직면해 있는 어려운 경영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보다 긴 안목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혁신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CEO 임기를 통상 신규선임 2년, 연임 시 1년으로 운영하는 경우 중장기 전략 추진보다 상대적으로 단기 성과에 치중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임기를 1~2년으로 탄력적 운영할 경우 CEO가 리더십을 발휘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돼 자회사 CEO 중심의 책임경영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지주도 계열사 10곳 중 7곳의 대표 연임을 확정했다. KB증권, KB국민카드, KB캐피탈, KB생명보험, KB저축은행, KB인베스트먼트는 각각 박정림·김성현(복수 대표), 이동철, 황수남, 허정수, 신홍섭, 김종필 대표 체제를 이어가며, 임기는 모두 1년이다.
이미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허인 국민은행장의 3연임이 확정된 상황에서 계열사들 간 시너지 확보와 안정적 경영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 안정성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KB금융은 그룹의 지배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2010년 이후 10년 만에 지주 부회장직을 다시 만들었다. 부회장에는 양종희 KB손해보험 대표가 낙점됐다. 임기는 1년이다.
NH농협금융은 손병환 농협은행장을 새 회장으로 단독 추천했다. '관피아' 논란과 함께 '보수적' 이미지에서도 탈피하면서 기존 은행장을 그대로 회장직으로 올려 조직의 안정화를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의 경우 이달 말로 임기가 만료되는 계열사 4곳의 대표 중 1명을 제외하곤 모두 교체했다. 차기 우리카드 대표이사 후보로 김정기 현 우리금융지주 사업관리부문 부사장을, 차기 아주캐피탈 대표이사 후보로 박경훈 현 우리금융지주 재무부문 부사장을, 차기 우리에프아이에스 대표이사 후보로 김성종 현 우리은행 IT그룹장을 각각 추천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최광해 대표이사는 연임했다.
관건은 권광석 우리은행장의 연임 여부다. ‘1년 임기’로 올 초 취임한 권 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업계에서는 안정을 추구하는 여타 금융지주사들처럼 권 행장의 연임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금융권 인사는 각 금융사들의 당면 과제인 디지털 혁신과도 관련이 깊다.
특히 NH농협금융 회장 후보에 오른 손 행장은 농협은행을 경영하며 올원뱅크센터Cell(셀) 등 5개 부문 8개 에자일 조직을 운영하며 효율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다. 데이터사업부와 함께 인공지능(AI) 전담조직도 신설했다. 비대면 개인종합자산관리(PFM) 서비스도 오픈했다. 또 농협금융 ESG(지속가능경영) 모델 등 산업 중심의 녹색금융 생태계도 구축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을 가속화해 신한SOL을 시중은행 가운데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 1위로 끌어 올리는 한편, 디지털혁신단 출범을 통해 은행업의 영역을 뛰어넘는 혁신적 신사업을 추진한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 추천됐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도 마이데이터, 마이페이먼트 등 미래 핵심사업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며 카드업계 DT를 주도하는 등 탁월한 성과 창출 능력을 인정받았다.
3연임에 성공한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 역시 재임 당시, 2년 간 1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간편결제 플랫폼 ‘KB페이’를 선보이는 등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다.
앞서 지난 9월 3연임에 성공한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3기 경영 구상의 핵심 키워드로 글로벌과 디지털을 꼽았다. 윤 회장은 디지털 부문에서 경쟁력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종합 금융서비스' 제공을 제시했다.
조직의 슬림화를 통한 경영 효율화를 추구했다는 점도 인사 키워드 중 하나다.
신한금융은 기존 부사장-부사장보-상무 3단계로 운영되던 경영진 직위 체계를 부사장-상무 2단계로 축소해 부사장급 경영진이 각 부문별 책임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또 그룹 경영관리부문은 전략, 재무 등 팀 단위로 산재되어 있던 지주회사의 경영관리 기능을 통합 효율화 했다. 특히 그룹 및 자회사의 핵심 경영이슈에 대해 준법지원, 감사 담당 부서와 상시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서 사전/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금융소비자보호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정립한다.
우리금융은 지주사와 은행의 조직 슬림화에 방점을 찍은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도 함께 실시했다.
현행 '7부문-2단-5총괄' 체계를 '8부문-2단'으로 슬림화해 임원 조직 4개를 축소하고, 부서도 통폐합해 5개를 줄인다. 또 그룹 중점사업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산관리·글로벌·CIB 사업부문은 폐지하고, 해당 업무는 사업성장 부문에서 통합 수행하도록 했다.
우리은행도 3개 사업그룹을 줄이고 임원수(행장, 상임감사위원 제외)를 기존 23명에서 20명으로 3명 감축하는 '조직 슬림화'에 나섰다.
하나금융지주는 내년 3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기 만료에 따라 다음 회장후보를 확정한 뒤 그룹임원후보 추천위원회를 통해 계열사 대표이사 최종후보를 선정한다. 내년 1월 회추위에 이어 2월 임추위를 통해 주요 계열사 CEO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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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규 하나은행장과 이진국 하나금융투자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여타 금융지주사들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계열사 CEO들의 연임을 선택한 만큼, 하나금융도 '안정'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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