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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프레임이라는 편견에 갇히면 때론 '악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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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프'의 '세희' 役 김주연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의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73)은 2세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당시는 자폐 원인이 후천적이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 때문이라고 여기던 시대였다. 그랜딘의 엄마는 편견에 맞서 딸을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키워냈다.


그랜딘의 감동 실화는 2010년 할리우드에서 '템플 그랜딘'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는 그랜딘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다. '템플'이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초연했다.


극장에서 공연을 보진 못했다. 인터넷 배너 광고 덕에 운 좋게 '템플' 공연 실황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었다. 주인공 템플 역의 김주연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주연은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연극 '비프'에 출연한다. 연습실에서 만난 김주연은 "'템플 그랜딘'이라는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김주연의 자폐 연기는 고민과 탐구의 흔적을 보여줬다. "어색하고 어려웠다. 자폐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았다.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을 살려야 할지 고민했다. 너무 감정적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초연이어서 감정의 흐름에 맞춰 대사를 조정할 수 있었다. 상대를 정면으로 볼 수 없는 역할이기 때문에 시선 처리도 과장되지 않게, 어느 정도가 자연스러울지 많이 고민했다."


김주연은 한편으로 '템플' 연기가 재미있고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거나 실험적인 작품을 좋아한다. 극을 만들 때 힘들긴 하지만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연기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템플'도 실험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했다.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었다."

[On Stage] 프레임이라는 편견에 갇히면 때론 '악마'가 된다 연극 '비프'에서 '세희' 역으로 출연한는 김주연 [사진= 주다컬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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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템플'로 자폐연기 이어 편견 담은 철학적 이야기 '비프'
무거운 소재·실험적인 작품 머리 싸매고 고민하면서 희열

김주연이 좋아하는 또 다른 장르는 고전이다. 그는 지난해 '시련', 올해 '데미안'에 출연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갈매기'를 꼭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고전을 너무 사랑한다. '갈매기'는 연극영화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해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다. 희노애락이 담겨 있는 좋은 희곡이다. 꼭 '갈매기'가 아니더라도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하고 싶다."


인터뷰는 '비프'의 김지호 연출과 함께 진행됐다. 김 연출도 "긴 시간 동안 같이 얘기해볼 수 있는 인간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고전에 대한 욕심이 있다"고 밝혔다.


묵직한 극을 좋아하는 배우와 연출이 만나 만드는 '비프'는 과연 어떤 연극일까. 김 연출은 "'비프'가 고전은 아니지만 철학적·문학적으로 탐구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비프'의 배경은 어느 국제고등학교다. 등장인물은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싫어한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각자의 트라우마가 있다. 편견에서 비롯된 시선들이다. '비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 동성애자, 재벌 3세 같은 배경이 있다.


김 연출은 '비프'가 편견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너무 쉽게 갖게 되는 편견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편견이 타인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그 상처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On Stage] 프레임이라는 편견에 갇히면 때론 '악마'가 된다 연극 '비프'에서 '세희' 역으로 출연한는 김주연 [사진= 주다컬쳐 제공]

김주연이 지난 여름 공연한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과 비슷한 면이 있다. 김 연출은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학생과 선생의 소통 부재로 인해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악한 감정이 드러난다. '비프'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보인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를 투영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에서 학생들은 악마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선생님과 맺은 관계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적 관계일 뿐이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대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비프'에서 학생들은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학생들과 달리 소통을 시도한다. 다만 그 태도가 미온적일 뿐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도 계속 놓친다. 결국 아이들은 고민을 풀어낼 방법이 없어 궁지에 몰린다.


김 연출은 "편견을 가졌다는 자체보다 편견 때문에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편견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니까 실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힘든건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 해서 사건이 극으로 치닫는다. 작품을 보고 우리가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제목 '비프'에는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선생님에게 보내는 신호이자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On Stage] 프레임이라는 편견에 갇히면 때론 '악마'가 된다 연극 '비프'의 김지호 연출 [사진= 주다컬쳐 제공]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에서는 학생 가운데 절대 악에 가까운 인물이 존재한다. '비프'에서는 절대 악, 절대 선을 보여주는 인물이 없다. '비프'는 누구에게나 인간의 내면에 어떤 극한 상황에서 표출될 수 있는 악마적 본성이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김 연출은 "모든 인물이 다 논쟁적이다. '유진'이라는 인물은 솔직하다. 그래서 뒷끝이 없어서 좋다라고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솔직해서 폭력적이다라고 볼 수도 있다. 보기에 따라 인물이 나빠보일 수도 있고, 저게 무슨 문제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연극이다"라고 했다.


김주연이 연기하는 세희는 우등생이지만 그 역시 남에게 쉽게 꺼내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런 세희에게 친구가 총을 선물한다. 극 중에 총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의문의 상자가 등장할 뿐이다. 세희는 상자를 들고 태연하게 걸어간다. 김주연은 그런 세희의 모습이 "어떤 때는 그냥 걸어가고 있는 평범한 여학생으로, 또 어떤 때는 정말 무서운 사람으로 보였으면 한다"고 바랐다.


논쟁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인물로 관객이 생각해볼 여지를 만들어보겠다는 뜻이다. 인물 표현 방법을 둘러싼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연기를 하면서 여러 독백을 맣이 해봤지만 세희의 독백이 확실히 어렵다. 일종의 고해성사처럼 혼자 읊조리는 독백인데 어떻게 듣는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너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독백이기 때문에 어렵다."

[On Stage] 프레임이라는 편견에 갇히면 때론 '악마'가 된다 연극 '비프'에서 '세희' 역으로 출연한는 김주연 [사진= 주다컬쳐 제공]

다문화가정·동성애·재벌3세…타인의 시선에 관한 트라우마
평범한 여고생 같은 '세희' 역…무서운 사람으로도 비쳤으면

다만 김주연은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보다는 관객들이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연극이라고 했다. "극이 80분이라면 70분 편하게 보다가 마지막 10분 동안에 '어! 갑자기 뭐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연극이다. 극의 언어들이 일상 대화들로 이뤄져있다. 갈등도 친구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각자 갖고 있는 소통의 부재를 끙끙 앓다가 마지막 10분 동안에 왜 이 사람들이 앓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극이 전반적으로는 힘들거나 불편한 부문들이 거의 없다."


김주연은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보다 '비프'의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세희의 대사는 쏟아내는 말이 아니라 담고 있는 말이 많다. 관객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겠다. 세희라는 인물을 보면서 관객 중 한 명이라도 나쁜 생각을 마음 속에 갖고 있었다면 좀 버리고 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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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는 오는 12월5일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개막해 내년 2월14일까지 공연한다. '세희' 역에 김주연 외 서혜원, 유유진이 출연한다. 영어교사 정동우 역에 서승원·이준혁·주석태가, 문학교사 윤영준 역에 김지휘·양승리·윤정혁이 출연한다. 세희의 친구인 '이지수' 역은 병헌·임건혁이, '유진' 역은 김아석·이우종이 맡는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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