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추진 수정안, 4대그룹 지분구조로 살펴보니
주요그룹 의결권 10%대 밖에 안돼 경영권 공격에 취약
[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의 최대 쟁점인 3%룰을 대주주 합산이 아닌 개별 인정으로 수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여전히 투기세력의 기업 경영권 침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들도 대주주 의결권을 대주주별로 각각 3%까지 인정한다 해도 지분구조상 대주주 전체 의결권이 10% 내외로 제한돼 헤지펀드나 적대세력 등이 감사위원 선임을 놓고 공격할 경우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상법ㆍ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 등 이른바 기업 규제 3법 중에서 기업들이 가장 크게 반대하고 있는 3%룰의 일부 수정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알려졌다. 3%룰은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고 이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주당은 당초 3% 합산인 정부 원안을 그대로 추진하려고 했지만 경제계의 반대가 심하자 의결권 3%를 대주주 합산 방식이 아닌 특수관계인도 포함해 개별 3%까지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의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김병욱 의원이 지난 9월 발의한 '상장회사법'도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르면 오는 16~17일께 담당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와 정무위 법안소위에 법안을 각각 상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대주주 개별로 3%까지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이사회의 핵심인 감사위원 자리를 적대적 외부세력에 뺏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이나 현대차, SK 등도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삼성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분 17.33%를 들고 있고,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각각 5.55%를 가지고 있다.
상법 개정안대로라면 감사위원 선출 시 이들의 지분율은 각각 3%만 인정받고, 나머지 3% 이하의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친다 해도 14.02%까지만 의결권을 가져갈 수 있다. 만약 헤지펀드가 지분을 3%로 쪼개 법인을 여러 개로 나누고 다른 주주들과 합세한다면 얼마든지 삼성물산의 감사위원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된다.
현대차와 SK는 지분구조가 더 취약하다.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경우 기아차가 17.28%,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7.13%, 현대제철이 5.79%를 보유 중이다. 이들이 인정받을 지분율 총 9%와 나머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도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SK그룹 역시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최대주주가 인정받을 수 있는 지분이 10% 정도다.
3%룰 개별로 완화해도 감사위원 자리 적대세력에 뺏길 가능성 4.6배 올라가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10%밖에 인정받을 수 없다면 헤지펀드나 적대적 M&A(인수합병) 세력과 같은 투기세력의 공격에 얼마든지 노출된다. 실제로 2004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이 SK 주식 14.99%를 확보해 이를 3%로 쪼개고 5개 펀드로 분산시켜 SK그룹의 경영권을 공격한 적이 있다.
지난해에는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각각 2.9%, 2.6% 가진 상태에서 경영 참여를 시도한 바 있다. 대표 대기업도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는데, 중견ㆍ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법 개정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3%룰 자체가 외국에 사례가 드물고 헌법상 재산권 침해 소지도 다분하므로 폐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개정안을 추진해야 한다면 투기세력이 공격할 시 지분 제한을 풀어주거나, 지분율 인정분을 크게 올려 기업이 위기일 때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최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강화가 통과되면 외부 주주가 제안한 감사위원 후보자가 선임될 가능성이 현행 대비 11.4배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당의 수정안대로 개별 3%를 적용해도 가능성은 4.6배로 올라간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상무는 "상법 개정안은 헤지펀드의 활보에 따른 심각한 경영권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며 "특히 지주회사가 심각한 피해를 받을 수 있는데 정부가 투명한 지분관계를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권장해온 점을 고려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3%룰 논란에 묻혀 기업규제법의 다른 쟁점들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는 것도 우려하고 있다. 3%룰뿐 아니라 다중대표소송제, 전속고발권 폐지,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등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상법 개정안에서 다중대표소송제는 적은 비용으로 다수의 기업에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기업 경영권 흔들기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누구나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기업을 직접 고발할 수 있게 돼 경쟁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 공정위와 검찰의 중복조사 등 큰 혼란을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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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에게는 3%룰뿐 아니라 다른 규제법안들도 치명적"이라며 "아직 국회 일정이 남아 있고 추가로 법안 수정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회를 찾아 지속적으로 설득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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