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권 개도국 표 쟁탈전
아프리카·유럽 포기 말아야
K-방역 넘는 ODA 비전 총동원
첫 세계무역기구(WTO) 여성 수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나이지리아 전 재무·외교장관 모습.(이미지 출처=AF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한국인이자 여성 최초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하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상대 후보보다 약한 '언더독'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남은 기간 미국과 동북아시아는 물론 중남미·남유럽·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표밭'을 최대한 공략하는 속도전을 펼친다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 후보인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전 나이지리아 재무·외교장관이 우세할 것으로 점쳐지는 아프리카도 포기하지 말고 한 표라도 더 분산시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아프리카·EU 빼도 92표…표 쟁탈전에 총력 쏟아야
10일 통상 전문가들에 따르면 총 164표(163개 회원국+EU) 중 오콘조-이웰라 후보에 44개의 아프리카 표가 몰리고, 28개의 유럽 표(27개국+EU 단체 자격 1표)도 쏠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세계은행(WB)에 근무하면서 오랜 기간 미국에 살았던 점 때문에 미국 유세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그러나 결선은 '권역별 경쟁'이 아닌 '국가별 경쟁'으로 넘어갔다는 게 중론이다. 아프리카 44개국 모두 오콘조-이웰라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거나 유 본부장이 독일·프랑스 표를 뺏겨 28개의 EU표를 잃을 것이란 우려를 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당초 2라운드는 인물보다 아프리카, 영 연방 등 지역이나 역사적 연고를 기반으로 지지표가 결집해 유 본부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면서도 "이 같은 전망을 딛고 유 본부장은 유럽, 중남미, 아시아·태평양, 중앙아시아 지역 등 지역별로 고르게 WTO 회원국들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오콘조-이웰라 후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과 미국 우방국은 물론 유럽, 심지어 아프리카 표조차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주문이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이 아프리카에 공을 많이 들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아프리카 표를 뺏어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유럽은 독일, 프랑스 등 EU 회원국은 물론 아프리카와의 유대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한 동유럽 19개국 등을 공략해볼 만하다"며 결선은 "결선은 '1국 1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유럽은 물론 중남미,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중점적으로 공략해 표를 획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진국-개도국 프레임, 'K-방역' 믿고 안주할 때 아니다"
유 본부장은 그동안 ▲다자무역의 수혜를 입은 모범 국가 ▲'K-방역'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에 기여 ▲미국·유럽 집중유세 등을 통해 결선에 올랐다. 이 세 전략은 오콘조-이웰라 후보에게 인지도에서 밀리는 유 본부장과 한국이 낼 수 있는 제한적인 카드로 꼽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진국-개도국 가교 역할 강조, 'K-방역' 프리미엄 등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1국2표' 체제였던 2라운드와 달리 '1국1표'로 바뀐 이상 회원국들에게 '선진국 표를 싹쓸이하겠다'는 인상을 줬다가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K-방역으로 세계의 팬데믹을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강조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안에서 'K-방역 시스템'이 효과가 컸고, 방역 물품을 수출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다자무역에 크게 기여했다는 전략으로 간다면 공감하지 않을 나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유 본부장과 정부는 'K-방역'을 결선 진출까지 잘 활용했지만, K-방역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필요하면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 신 통상전략(K-통상전략)'에 담긴 공적개발원조(ODA)와 수요국 맞춤형 자유무역협정(FTA) 전략 등 'K-방역'을 넘는 통상 비전과 외교적 카드를 강구할 때가 됐다"고 조언했다.
국책연구기관과 민간 기관 등과 협력해 에티오피아, 케냐 등 한국의 지식 공유사업인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의 수혜를 입은 나라들에 대한 유세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나친 美 의존 금물…선진국도 개도국 '표밭'으로 여겨야"
유 본부장이 '역전승'을 하려면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 표를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수적으로 보면 '아프리카 44표'와 '유럽 41표'가 오콘조-이웰라 후보 가시권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선진국과 이들 국가의 영향을 받는 개도국 표를 끌어와 추격전을 해야 한다.
'아프리카 유럽 표 분산 전략'과 '선진국 지지 획득 후 관련 개도국 표 쟁탈전'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다. WTO 사무국에 따르면 사무총장 선출 최종 라운드의 회원국 간 협의 절차를 오는 19~27일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8일 남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미국, 독일, 프랑스의 표를 확보한다고 가정해도 이들 국가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중미·카리브해(18개국), 남미(13개국), 오세아니아(8개국) 등의 표까지 획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164표 중 선진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나라는 서유럽, 북미 지역의 13개국과 호주, 일본, 한국 등을 합쳐도 16개국 안팎에 불과하다.
강 교수는 "결선은 '1국1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나이지리아보다는 선진국에 가까운 우리로서는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지지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현안인 중국 국영기업 및 보조금·기술탈취 문제 등 각론에서도 지나치게 친 미국으로 입장 정리를 해버리면 아프리카를 비롯한 동유럽, 중남미, 서남아시아 등 개도국 표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결선에서도 컨센서스 가능성이 낮은 후보자부터 배제해 단일 후보를 압축하는 방식으로 선거가 진행된다. 이후 WTO 일반이사회가 단일 후보를 채택한다. 회원국 협의(컨센서스)를 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만 투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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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초 최종 결과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최종 결론이 11월 7일 전에 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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