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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고흐의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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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고흐의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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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이고 재빨리 소진되는 생명을 가진 여름이 시작되었다. 긴 낮은 찌는 듯했지만 불타는 깃발처럼 금방 타올라버렸고, 짧고 무더운 달밤 다음에는 짧고 무덥고 비 내리는 밤이 이어졌다. 꿈처럼 빠르게, 온갖 형상들로 충만하여, 열병처럼 달아오르다 사그라졌다."(헤르만 헤세)


섬세하고 예민한 화가 클링조어가 어느 해 여름 자신을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는 남은 생명을 모두 끌어 모아 마지막 작품을 완성해낸다. 헤르만 헤세가 1920년에 발표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여름 한 달 만에 썼다는 이 소설은 고뇌하는 지성으로서 헤세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얼굴을 겹쳐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우리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었을 민음사판(版) 번역본은 고흐가 그린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을 표지에 담았다.


"고흐는 그(헤세)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하나의 뜨거운 화두였다. 클링조어의 얼굴에서 문득문득 고흐의 얼굴이 스치고, 클링조어의 친구인 루이스의 얼굴에서 언뜻언뜻 고갱의 얼굴이 스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귀가 잘린 자화상을 그리며 광기와 예술혼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고흐의 분노는 헤세의 클링조어가 자화상을 그리며 느끼는 고통과 닮았다."(정여울)


우리는 고흐의 여름이 어떻게 끝났는지 듣거나 읽었다. 고흐는 1890년 7월27일 프랑스의 오베르쉬르우아즈 근처에 있는 밀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쏘았다. 즉사하지는 않았고, 피를 흘리며 숙소로 돌아가 고통을 받다가 이틀 뒤 숨을 거뒀다. 고흐가 죽던 해에 그린 '밀밭'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화가의 최후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하다. 그림 속 까마귀들은 총성에 놀라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다.


1965년, 한 농부가 오베르쉬르우아즈의 들에서 권총 한 자루를 발견한다. 7㎜ 포켓 리볼버였다. 리볼버는 실린더의 회전을 이용한 연발 권총이다. 1862년 오늘 세상을 떠난 미국의 무기업자 새뮤얼 콜트가 1836년에 내놓은 '콜트 패터슨 리볼버'가 대표적이다. 농부가 발견한 리볼버는 프랑스의 '르포슈'가 제작한 물건이다. 권총은 고흐가 머물던 '라부' 여인숙의 주인에게 넘어가 자손에게 이어졌다. 고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꼬리표도 함께.


고흐의 죽음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자살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임상병리학자 겸 총상 전문가 빈센트 디 마이오는 2016년 발표한 '진실을 읽는 시간'에서 여러 법의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고흐가 들에서 놀던 아이들이 잘못 쏜 총에 맞았다는 주장도 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분명하지 않으니 들에서 주운 권총이 정말 고흐를 죽게 했는지 증명하기는 더 어렵다.


지난해 6월20일,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권총'이 파리의 경매사 '옥시옹 아르-레미 르 퓌르'가 진행한 경매에 나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위대한 화가의 비극적 삶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논란과 무관하게 경매는 성공적이었다.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권총은 감정가의 세 배나 되는 16만2500유로(약 2억1400만원)에 낙찰됐다. 구매자는 미술품 수집가로만 알려졌다. 혹시 외로운 화가 고흐의 영혼이 수집가의 손을 빌려 권총과 여러 논란을 함께 거두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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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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