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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적자생존 진화론이 가둔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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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적자생존 진화론이 가둔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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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도발한 수출규제가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일본의 파상공세를 경제침략으로 규정하고 전면 외교전에 돌입했다. 국민들은 거리와 쇼핑 일상에서 저마다 가능한 수단을 찾아가며 복수 혈전을 외치고 있다. "항일 독립 운동은 못 했어도 이번 불매 운동은 꼭 한다"며 결의를 다지는 시위대 얼굴에서 살짝 구한말 의병 모습까지 보인다. 갑자기 분위기가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의병대장으로 넘어가 저기 동해 바다에서 일본 배 9척을 격파했다는 승전보가 날아올 것만 같다.


이만큼 지금 한국과 일본은 승자 아니면 패자로만 결판나는 사각의 링 안에 던져진 격투기 선수만 같다. 수백 번, 수천 번이 넘을지도 모르게 일본의 침략, 한국의 응전이라는 격전 모드가 반복되는 중이다. 지긋지긋할 따름이다.


한데 똑같은 그 패턴 속에 한 가지 좀 다름 느낌이 번득인다. 그것은 일본이 그물 쳐 놓은 강력한 맹신으로서 진화론 프레임이다. 일본이 싸움을 걸고 우리를 끌어들인 신념 체계를 분석해보면 이 요상한 협잡을 알 수 있다. 분명 일본 리더들은 적자생존이라는 시대착오적 강박관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다윈의 생물 진화론에 도입됐던 적자생존 개념이 일본이라는 콤플렉스 덩어리 나라에 깃들어 극단적인 변질을 하게 된 사례다.


일본의 패착은 적자생존을 결정짓는 '적응'에서 바로 튕겨 나온다. 19세기부터 서양화와 근대화를 절대적인 여건으로 신봉한 일본이기에 적응이란 곧 정복자에 대한 순응이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자연 선택을 따른 일본인의 인식은 동양에서 유일무이한 선민사상으로 급격히 왜곡돼갔다. 강한 서양 정복자를 따라 군사력과 경제적 물적 토대 중심 하드 파워에 꽂힌 일본제국주의가 출현한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렇게 약육강식에 강한 자만이 선택받아 살아남는다고 알아듣는 일본인의 비뚤어진 세계관이 19, 20세기를 관통했고 안타깝게도 21세기 들어 더욱 극단화되고 있다. 하물며 "살아남기 때문에 적합하고" "적합하니까 살아남는다"는 식의 순환논리가 되고 만다는 약점 때문에 현대 진화생물학에서는 적자생존이라는 문구를 잘 사용하지 않음에도 일본은 요지부동이다.


적자생존, 즉 'survival of the fittest' 의미 자체마저도 일본식 세계관은 곡해한다. 강하다 약하다 하는 것은 이 '적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적합은 환경에 대한 적응도(fitness)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환경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이 적응도도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강함이나 약함으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응도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는 다음 세대로 가는 일종의 번식 성공률(reproductive success)로 해석해 기실은 전통 문화 자본과 같은 소프트 파워를 중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은 여태 물자 하드 파워에만 집착해왔다. 경제동물이라는 욕까지 들어가면서.


그렇게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은 용도 폐기된 약육강식 적자생존과 일본만이 역사로부터 자연 선택받았다는 병적 선민사상에 마취돼갔다. 한국은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적합한 자가 아니고 선민도 아니므로 당장 경제적 물적 토대 파워를 가진 일본이 할 짓은 1인자 놀이 말고는 없게 되었다. 이 카드가 결국 일본 자신을 망가뜨리고 파국에 이르게 할 병적 세계관임을 믿지만 문제는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어느새 우리 내부에 똬리를 튼 그 악질 외래 사상이 완연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덩달아 약육강식 적자생존 진화론을 신봉하는 한 오로지 물질적 하드파워가 센 자만이 이긴다는 진화론 프레임의 무한궤도 쳇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발상이 바로 기술 국산화로 일본을 이기면 끝난다는 환상이다. 반도체 불화수소도, 수소차 핵심 탄소섬유도 일본산을 대체하는 국산으로 문제 해결을 하면 된다는 신념 말이다. 기술 경쟁력 우위를 점해야 적자 생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정치적 당위론일 순 있다. 그러나 현실 경제 거래 비용 차원에서는 그저 헛헛하다. 단 6개월~1년 안에 미국이나 일본이 독식 중인 표준 특허같은 주요 기술 보유국이 될 수 없으니.


때문에 정치 대결을 노려 해묵은 적자생존 진화론 프레임으로 쳐놓은 한일관계 거미줄을 싹둑 끊었으면 한다. G2G(정부 대 정부) 전선 대신 P2P(민간 섹터끼리 관계) 생태계로 급선회하자. 과거 정주영, 최종현의 전경련과 일본 경단련 파트너십처럼 강한 승리자 말고 부드러운 적응자들이 함께 공존 공생하는 생태계를 바라봐야 할 때다.


정치인과 관료에게는 하드 파워만 알아주는 구식 적자생존 진화론이 낫겠지만 한국 의병과 일본 일꾼 민간 섹터들은 그렇지 않다. 장님과 앉은뱅이처럼 서로 기댈 줄도 아는 부드러운 적자생존 진화론을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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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한국문화경제학회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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