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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소년원과 사회의 징검다리 'YES센터'…"분노조절 배우며 자립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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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찬 소년 품어줄 사회는 없나]<8>'범죄소년'을 말하다

한국소년보호협회 산하 2014년 설립
소년원서 배운 직업훈련 심화 교육

취업 성공해 센터 떠난 뒤에도 철저한 사후관리
외출·외박 통제에 소년범 지원율 떨어지지만
"센터가 있어 마음 다잡았다" 무한애정

[르포]소년원과 사회의 징검다리 'YES센터'…"분노조절 배우며 자립준비" 경기도 화성시 YES센터에서 소년원 출원 청소년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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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경기도)=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제법 날씨가 뜨거워지기 시작한 지난달 10일, 경기도 화성시의 'YES센터(사회정착지원센터)'를 찾았다. 센터 한편에 마련된 작업장에는 두꺼운 청바지와 청재킷으로 몸을 감싼 학생 셋이 일렬로 앉아 연신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용접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연습이다. 소년원 출신인 이들은 단절돼 있던 사회와 자신을 다시금 이어붙이려는 듯 굵은 땀방울을 연신 뜨거운 불꽃 위로 떨궜다.


2014년 설립된 YES센터는 한국소년보호협회 산하 시설로 소년원과 사회의 중간 단계 역할을 한다. 소년원 출원 후 갈 곳이 없거나 소년원에서 배운 직업훈련을 심화해 받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이곳에 머문다. 자동차정비ㆍ골프 매니지먼트ㆍ용접ㆍ제과제빵ㆍ바리스타 등 총 5개 학과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센터는 2인1실 생활실 32개와 강의실, 실습장을 비롯해 헬스장과 노래방 등 오락 시설도 갖추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립을 준비하게 된다.


이날 학과 수업은 제과제빵과 용접 두 개만 진행됐다. 용접 수업에서 만난 이진수(20ㆍ가명)씨는 지난해 5월 소년원 출원과 동시에 센터에 입소했다. 이씨의 팔과 목 곳곳엔 용접 불똥이 튀어 입은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의 목표는 용접공이 돼 자립하는 것이다. 이씨는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군대 가기 전까지 돈을 모아두고 싶다"며 "군대 다녀온 뒤엔 대학 진학 생각도 있는데, 계속해서 용접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르포]소년원과 사회의 징검다리 'YES센터'…"분노조절 배우며 자립준비" 소년원 출원 청소년이 YES센터에서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센터가 운영하는 카페 뒷공간에선 제과제빵 수업이 한창이었다. 주먹 곳곳에 흉터가 남아 있는 학생 4명이 노릇하게 구워진 빵 위에 생크림을 바르며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마음대로 빵 모양이 잡히지 않아 투덜거리면서도 선생님 설명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들었다. 이들이 처음부터 수업에 열심히 임했던 것은 아니다.


제과제빵 담당 김태환(40) 선생님은 "처음엔 본인들이 왜 빵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며 "아이들이 산만해 수업 진행도 쉽지만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생업마저 내팽개친 선생님의 모습에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김 선생님은 "빵집을 연 지 한 달 만에 이런 센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업자에 가게를 맡기고 한걸음에 달려왔다"며 "지금까지 탈북자ㆍ장애인 등을 교육해봤는데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빵 기술이 아닌 '목적의식'이었다"고 했다.


김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학생 4명이 만든 케이크 4종류가 완성됐다. 아직 서툰 솜씨에 선생님은 '낙제점'을 줬지만,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김 선생님은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법을 배워 가면서 아이들이 눈에 띄게 달라졌고, 이런 점이 나를 더 노력하게 만든다"고 힘줘 말했다.

[르포]소년원과 사회의 징검다리 'YES센터'…"분노조절 배우며 자립준비" YES센터에서 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는 소년원 출원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선보이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소년원을 다녀온 아이들의 변화는 극적이지만 한편으론 매우 느리다. 대다수가 정규교육 받지 않아 집중력이 약한 탓이다. 센터는 수업의 효율을 높이고 이탈을 막고자 학과 수업을 오전 8시30분부터 4시간 동안만 진행하고, 오후엔 체육활동 등을 진행한다. 또 학생들 상당수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인성교육에도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학생들이 화를 잘 참지 못하는 모습은 오후에 이뤄진 축구 시합에서 잘 드러났다. 호루라기가 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자 운동장 곳곳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패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팀원뿐 아니라, 경기 중 실수한 자기 자신에게도 욕설은 거침 없이 쏟아졌다.


선생님들은 이런 분노조절을 다루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부모님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꼽았다. 용접 수업을 담당하는 장재희(63) 선생님은 "아이들 대부분 자존감이 낮은데, 부모로부터 상처가 되는 말을 듣고 자란 친구들이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씩 부모와 통화한 뒤 자존감이 더 떨어지고 분노가 폭발해 사고를 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경우에 대비해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평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센터의 역할은 학생들이 취업에 성공해 센터를 떠난 뒤에도 이어진다. 학생들이 취업한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사업주나 동료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점을 파악하는 식이다. 또 처음으로 의식주를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일부 학생들은 센터를 나선 뒤에도 담당 선생님에게 월급통장을 맡기기도 한다.

[르포]소년원과 사회의 징검다리 'YES센터'…"분노조절 배우며 자립준비" 최한석(20ㆍ가명)씨가 YES센터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지난 5년간 센터는 소년원 출신의 많은 청소년을 사회로 내보냈지만, 앞으로의 고민은 더 깊다. 센터를 거쳐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이 이제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범죄소년'이란 낙인을 떼고 사회에 제대로 적응했는지 실질적인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장재현 교육팀장은 "센터 설립 후 약 400명의 아이가 우리 기관을 거치며 대부분 취업이나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면서도 "취업 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성공했다고 판단하는 사례는 약 10% 정도"라고 했다.


현재 소년원에 수용돼 있는 청소년들의 센터 지원율이 떨어지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봉진 센터장은 "외출과 외박이 센터 통제 아래 이뤄지다 보니 센터를 또 다른 소년원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센터를 경험한 학생들은 센터에 무한한 애정을 보냈다. 2015년 센터에 입소한 뒤 소년원을 한 차례 더 다녀오며 입소와 퇴소를 반복했던 최한석(20ㆍ가명)씨에겐 센터가 집과 다름없다. 최씨는 "나를 밀어주고,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어른들을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며 "센터가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2016년 9월 센터에 들어온 김동휘(22ㆍ가명)씨는 일식집 취업이 확정됐다. 김씨는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취업에 필요한 기술까지 배울 수 있어 정말 만족하고, 지금 소년원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다"며 "첫 월급을 타게 되면 가장 먼저 센터 선생님을 찾아 밥을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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