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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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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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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읽기 시작한 책의 표지를 넘겨 목차를 훑어보다가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오랫동안 바라보게 한 그 이름. 아직도 그가 떠나버렸다는 것이 실감이 안 되는 그 이름. 고 노회찬 전 국회의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과 청춘을 갈아 넣고 때로는 과격한 사상집단과 손을 잡는가 하면 없는 살림도 합쳤다 나눴다 반복하며 간신히 연명해온 게 진보정치의 역사다. 그 역사 속에서 그의 이름이 빛났던 이유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그저 일부 노동자들의 일로만 보였던 진보정치를 대중의 영역으로 가져온 사람이어서다.


2004년 총선에 출마한 그는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라는 이른바 ‘불판론’으로 단숨에 자신과 민주노동당의 인지도를 상승시켰다. 2012년 총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전국단위 선거연대 때는 “왜 두 정당이 다른 정당인데 연대를 하느냐”라는 질문에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연대해야 한다.”는 재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큰 울림은 2012년 진보신당 당 대표 수락연설이다. 그가 소개한 6411번 버스는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부터 거의 만석이 돼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내려주는 버스다. 이 버스를 타고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이 젊은이들의 직장이 청소하고 정비하고 있지만 이를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이 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 분들이야말로 투명 인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묵묵히 세상을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투명 인간들을 위해 정치가 힘이 돼 주자고 역설했다.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김형민 SBS CNBC PD가 시사 주간지 '시사in'에서 2015년부터 만 4년 동안 매주 연재하고 있는 글을 엮은 책이다.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빌려, 따듯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룬다. 2017년에 이미 두 권이 출판됐는데 앞선 두 권의 콘셉트는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사건에 빗대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두 권은 사건의 주체가 된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콘셉트를 바꾼 이유로 “딸에게 역사란 교과서 안의 근사한 박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과 주변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물방울이 합쳐서 오늘로 흐르는 대하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편’은 지난 2년간의 연재분 중에 82편을 추려 15부로 구성됐다. 각 부마다 핵심 테마가 있고 이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나열했다. 1부는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의 개국공신 여진인 이지란 이야기와 몰려드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인 고려가 그들과 힘을 합쳐 외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난민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4부는 한국사의 ‘미스터 법맨’들의 이야기로 권력과 맞서 꿋꿋하게 법 집행을 한 고려 ‘영헌공’ 김지대, 거리의 변호사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 된 가인 김병로로 이야기가 눈에 띈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사법농단으로 재판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꾸짖는다. 저승에서 선배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노 전 의원의 이야기는 3부 국회의원 열전에서 ‘지하철 2호선에 남겨진 노회찬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노 전 의원이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 취업을 했던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일도 잘하기 위해서 용접 자격증을 딴 일화를 소개하며 “노회찬은 일 잘하는 노동자이면서 말 잘하는 노동자이기도 했어. 격무에 지친 노동자들의 귀마저 끌어당길 만큼 재미있고 어려운 개념도 쏙쏙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었지.”라고 적었다. 그의 촌철살인 언어감각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이었다. 노 전 의원은 “생존 때문에 그렇게 했어요. 노동운동 할 때, 노동자들이 신참인 내 말을 듣기나 하나요. 정당을 만들고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책을 길거리에서 설명할 때 30초도 길어요. 그 이상은 안 들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3부 17번째 이야기 ‘정치 1번지에 출마한 순천댁 박순천, 국회를 접수하다’편에서 저자는 최근 김원봉에서 시작하여 백선엽으로 번진 역사 논쟁을 합리적으로 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사석에서는 누님이라 불렀다는 여장부 박순천 의원의 친일 시비와 유신정권 때 박 전 대통령에게 투항해버린 점을 아쉬움으로 꼽으면서도 “역사적 인물을 파악할 때 그 빛 때문에 어둠을 놓쳐서도 안 되고, 어둠을 의식하며 빛을 지워서도 안 된다.”고 했다. 또 “인생은 짧고 그 각양각색의 인생들을 물감 삼아 이리 짜고 저리 칠하며 역사는 기나긴 캔버스를 그려나가는 거니까.”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영웅 만들기, 악마 만들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XXX의 아버지’라고 칭하고 누군가를 유일무이한 역사의 원흉으로 칭하기도 한다. 물론 위대한 사람이 큰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변곡점 역할을 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과도하게 준 나머지 함께 세상을 바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을 그냥 지나쳐버려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을 부각하려 나머지를 깎아내리는 격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역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결국 역사는 곧 개인사의 총합일 것이다. 특별하든 그렇지 않든, 위대하든 평범하든, 유명하든 무명소졸이든 그 모두의 경험과 선택과 결단이 합쳐지고 겹쳐지고 뒤섞여 이뤄내는 파노라마가 곧 역사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힘으로 많은 것이 변하지도 않는다. 정방향이든 역방향이든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한 개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그 개인이 사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총동원한 세월이 5년간 이어져도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반대로 누군가가 진실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해도 세상이 금방 확 바뀔 리도 없다. 역사는 투명 인간들과 함께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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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편 1, 2 / 김형민 지음 / 푸른역사 / 1만5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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