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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On Stage] 치열한 전쟁 온 몸으로 표현한 '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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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춤·연기로 보는 '三國志'…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에너지로 꽉찬 무대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무대 한가운데 홀로 버티고 서서 위용을 떨치는 장비. 얼굴은 땀범벅이다. 이마에서 땀줄기가 줄줄 흘러내린다. 공연은 아직 절반도 마치지 못했다. 여덟개 장면 중 이제 겨우 세 번째 장면. 저렇게 기운을 몰아 쓰면서 제대로 공연을 마칠 수 있을까 싶다.


장비가 버티고 선 무대는 장판교다. 장비가 주군으로 모시는 유비는 조조의 군대가 쫓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처자식마저 버리고 달아났다. 장비는 조조군의 추격을 막아 유비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 주려고 단기필마로 대군을 막아섰다. 흔히 '삼국지'로 읽히는 '삼국지연의'에서 장비의 용맹함이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신장은 팔척오촌이요 얼골이 검고 제비택 쌍고리 눈에 사모장창을 눈우에 번 듯 들고 세모마상(細毛馬上)에 당당히 높이 앉어 산악을 와그르르 무너낼 듯 세상을 모도 안하에 내려다 보니 익덕(翼德) 일시가 분명쿠나…." (판소리 '적벽가' 중 유비·관우·장비 셋이 제갈공명을 찾아가는 대목)


장비 역을 맡은 소리꾼 이재현(25)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누구든 장판교를 통과하려고 하면 사모장창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이재현이 장비의 무기 사모장창(蛇矛長槍)을 상징하는 부채를 촤르륵 펼쳐 보이며 껄껄껄 웃는다. 그 호탕한 웃음소리 뒤에 가쁜 숨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들린다.

[박병희의 On Stage] 치열한 전쟁 온 몸으로 표현한 '적벽' '적벽'의 한 장면 [사진= 정동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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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에서 지난달 22일 개막한 '적벽'은 배우들이 쏟아내는 에너지가 무대를 압도한다. 배우 스무 명은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땀투성이가 된다. 삼국지연의의 치열한 전쟁을 온 몸으로 표현하려는 듯 쉼 없이 무대 위를 뛰어다닌다. 이재현은 연습 시작 전에 비해 몸무게가 5㎏가량 줄었다.


적벽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웅장하고 장중한 대목이 많아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적벽가'에 뮤지컬을 결합했다. 힙합, 스트리트댄스 등 현대무용을 응용한 군무가 쉼 없이 이어진다. 삼고초려 장면에서 유비는 바닥을 훑는 현대무용으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해 공명의 마음을 산다.


"소리, 춤, 연기를 함께 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심하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 그만큼 무대 위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내려온다."

[박병희의 On Stage] 치열한 전쟁 온 몸으로 표현한 '적벽' '적벽'의 한 장면 [사진= 정동극장 제공]

적벽은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졸업 작품인 음악극 '적벽무'를 발전시킨 공연이다. 적벽무는 2016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대학생 뮤지컬 부문에서 우수상,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와 현대자동차그룹이 주관한 'H-스타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받았다.


당시 정동극장은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찾고 있었고 적벽무를 무대로 가져왔다. 전통 공연 활성화를 위해 작품을 직접 발굴하고 무대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창작 ing'의 첫 작품으로 2017년 적벽을 공연했고 올해까지 3년 연속 무대에 올렸다.

윤석기(35·조조 역), 정지혜(33·정욱 역)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대 경험이 없는 젊은 소리꾼, 뮤지컬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윤석기와 정지혜를 제외하면 모두 20대다. 스무 명 배우의 평균 나이는 25.3세. 젊은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 정지혜는 지난 7일 '아랑가' 공연을 마쳤다.


"아랑가는 혼자 끌고 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적벽은 배우 스무 명의 합이 중요하다. 그 어떤 공연보다 서로 주는 받는 기운이 중요한 작품이다.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몸을 충분히 풀 수 있고 덕분에 소리를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목도 근육이기 때문에 충분히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 온몸이 다 풀린 상태에서 시원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느낌이 든다."


정지혜도 적벽을 준비하면서 몸무게가 3㎏ 빠졌다. 연출은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 정호붕(56)이 맡았다. 그는 적벽무 때부터 제자들과 함께 극을 만들었다. 배우들이 대개 제자들이라 그런지 '한 번 죽어봐라'는 듯 혹독하게 연출한 느낌이 든다. "현대 무용의 역동적인 표현들을 동원해 전쟁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문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수준에 미치진 못하겠지만 한계라고 생각해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적벽을 다시 공연한다면 더욱 격렬한 움직임에 도전하겠다."

[박병희의 On Stage] 치열한 전쟁 온 몸으로 표현한 '적벽' '적벽'의 한 장면 [사진= 정동극장 제공]

적벽은 장르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장르의 융합을 시도하는 현대 공연의 전형을 보여준다.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세 개 부문(안무·앙상블·신인여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뮤지컬이라 규정하기는 어렵다. 여느 뮤지컬과 비교했을 때 무대의 변화가 거의 없다. 적벽대전 중 무대 천장에서 천이 내려와 동남풍이 부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도가 눈에 띄는 변화다. 관객 입장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판소리가 주(主)가 되지도 않는다.


연출가는 "현대 관객들은 주, 조(助)의 구분을 바라지 않는다. 융합의 대상이 되는 요소들이 수준 높은 단계에서 결합됐을 때 비로소 시너지가 나타난다"고 했다. 소리, 춤, 연기 등 극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함께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지 어느 한 쪽이 부각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에서 기예가 주가 되고 연기와 춤이 조가 된다면 작품의 퀄리티에 문제가 생겨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정호붕은 "판소리는 적층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뭔가가 더해져 완성도를 높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적벽가에서는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한 후 도망갈 때 '새타령'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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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타령을 아카펠라 화성으로 창작하고 싶었는데 올해 공연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크다. 다시 공연한다면 전문 아카펠라 창작자와 협력해 완성도 있게 다시 만들고 싶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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