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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On Stage]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을 비트는 연극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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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천국에 가다' 몸만 어른인 꼬마의 천진한 모습에 웃음
'나쁜 자석' 네 주인공의 9·19·29살 우정 그리며 열린 결말
'세기의 사나이' 3·1운동 때 죽은 주인공, 환생해 격동의 삶

[박병희의 On Stage]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을 비트는 연극 셋 연극 '소년, 천국에 가다'의 한 장면 [사진= 쇼온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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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혼모와의 결혼이 꿈인 열세 살 네모,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서른세 살', '아홉 살에 만나고, 열아홉 살에 사랑하고, 스물아홉 살에 내 인생이 되었다', '125년을 산 한 남자의 이야기'….


시간을 비트는 홍보 카피로 눈길을 끄는 연극이 잇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 소년, 천국에 가다= 네모는 미혼모의 아들, 열세 살이다. 아빠가 없지만 한없이 밝고 명랑하다. 이웃집에 사는 미혼모(부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다. 연극은 네모가 부자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극장에 불이 나자 배경은 천국행 버스 정류장으로 바뀐다. 네모의 아버지가 저승사자에게 네모를 이승으로 돌려보내라며 승강이를 한다. 결국 환생한 네모에게는 하루가 1년이다. 극장에 불이 난 지 이미 20일이 지나 네모는 서른세 살로 환생한다. 네모가 부자와 사랑을 나눌 시간은 두 달도 되지 않는다.


발랄한 소재, 무겁지 않은 진행 덕에서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린 네모를 연기하는 아역 배우 정창현(13)과 네모를 쫓아다니는 여자친구 두부 역의 김수아(17)는 깜찍하다. 몸만 어른인 네모를 연기하는 성인 배우도 능청스럽게 부자와 사랑을 나누지만, 아역 배우들이 주는 즐거움을 넘어서기 어렵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2005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나왔다. 염정아, 박해일이 출연했다. 영화에서는 열세 살 네모의 시점부터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연극에서는 이미 어른의 몸이 돼버린 네모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연출가 김형은(37)은 "영화를 본 사람들도 있어 좀 다른 연출이 필요했고 극단의 색깔도 보여주고 싶어 시간을 넘나들 수 있게 연출했다"고 했다. 시간을 넘나드는 부분이 좀 더 매끄러웠으면 어땠을까.


[박병희의 On Stage]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을 비트는 연극 셋 연극 '나쁜 자석'의 한 장면 [사진= 레드앤블루 제공]

◆나쁜 자석= 스코틀랜드의 작은 해안마을 거반에서 자란 네 친구 고든, 프레이저, 폴, 앨런의 우정을 그린다. 스코틀랜드 작가 더글라스 맥스웰의 2000년 데뷔 희곡 '우리의 나쁜 자석(Our Bad Magnet)'이 원작이다. 국내에서는 2005년에 초연됐다.


네 주인공은 아홉 살, 열아홉 살, 스물아홉 살의 시공간을 넘나든다. 아홉 살 때에는 20년 후를 기약하며 타임캡슐을 묻고, 열아홉 살에는 함께 밴드 활동을 한다. 고든은 다른 친구들과 결이 다르다. 다른 세 친구는 밴드에서 그를 탈퇴시키는 문제를 두고 갈등한다. 고든은 글을 잘 쓴다. 그는 많은 동화를 남기고 열아홉 살에 자살한다.


스물아홉 살에 나머지 세 명이 모이지만 셋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어렸을 때 리더 역할을 한 프레이저는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 위축되고 소심해진 태도를 보인다. 극의 중반부에 아홉 살 프레이저가 고든과 불 꺼진 폐교에 잠입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이후부터 얘기가 무척 복잡해진다. 극은 서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전체적인 느낌에 호소한다.


고든이 쓴 동화 '하늘정원'과 '나쁜 자석'은 극중극의 형태로 무대에서 재연된다. 특히 '원자력 시계 시대'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나쁜 자석은 상징과 은유만으로 이뤄져 아주 집중해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 믿지 않았고 물건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다, 물건들에게는 좋은 시절이었다'는 식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프레이저, 폴, 앨런이 폐교에 모인다. 그들 옆에는 큰 보자기에 덮인 정체불명의 기계가 놓여있다. 극은 이 기계에서 꽃비가 쏟아지며 끝난다. 꽃비가 내리는 장면은 고든이 쓴 하늘정원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다. 하늘정원이 무너지며 꽃비가 내린다. 나쁜 자석은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성(磁性)을 없앤 자석을 뜻한다.


[박병희의 On Stage]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을 비트는 연극 셋 연극 '세기의 사나이' 쇼케이스의 한 장면 [사진= 창작산실 제공]

◆세기의 사나이= 주인공 박덕배는 3·1운동 때 저승사자의 실수로 죽는다. 독립운동을 하러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배가 고파 들른 요릿집이 태화관이다.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한 바로 그 식당. 박덕배는 우연히 민족대표 33인을 만나 3·1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일본 경찰이 쏜 총탄에 맞는다.


박덕배와 저승사자는 모종의 거래를 한다. 저승사자는 박덕배를 환생시켜 세계 최장수 기록을 세울 때까지 살게 해준다. 대신 박덕배는 저승사자의 실수를 눈감아 준다. 박덕배는 125년을 살면서 윤심덕과 김우진, 이상, 손기정, 엄복동 등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난다. 그는 '사의 찬미', '오감도' 등의 작품에 영감을 주고 손기정을 격려해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도록 돕는다.


세기의 사나이를 연출한 최원중(45)씨는 "판타지 요소를 넣은 역사 코미디"라고 설명했다. 힘겨운 역사를 버텨낸 민중의 삶을 웃음으로 그려내겠다는 의도다. 그는 "박덕배는 비극적이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웃음과 낙천적인 성격을 잃지 않는다. 그를 통해 질곡의 역사를 버텨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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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성격을 띠는 박덕배와 저승사자의 만남 부분도 코믹하게 처리된다. 연출가는 "대극장에서는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멀어 배우의 표정이 잘 안 보인다. 배경에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만화 컷을 넣어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출한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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