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이브 생로랑에게 그가 디자인한 옷들이 대중의 취향과 일치할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그토록 간단한 대중심리를 모른다는 데 당황했다는 듯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하지만 박사님, 어떻게 하든 여자들은 제가 바라는 대로 옷을 입습니다."
대중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도, 텔레비전이나 잡지 속 광고들이 사람의 마음을 교묘히 뒤흔들 수 있는 것도 모두 개인의 욕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욕망은 개인의 내면에서 스스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욕망을 엿보고 그 욕망을 모방하는 데서 생겨난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무엇, 내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이 다른 사람들도 바라마지 않는 것이어야만 '욕망'이라고 칭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물건이라면, 대개 사람들이 누구나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명품'일 테고, 나아가 제아무리 값비싼 옷이나 가방을 걸쳤더라도 남들이 알아봐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장미셸 우구를리앙은 이 같은 욕망의 모방적 본질을 정신과 임상치료에 적용한 사례와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무의식중에, 또는 스스로 생겨난 줄 알았던 심리적 문제의 원인은 사실 특정 개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개인들 간의 '관계'에 있었다.
그는 인간사의 수많은 문제가 다른 사람에 대한 모방 또는 모방하려는 경쟁에서 비롯되며, 그 누구도 모방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강조한다. 오죽하면 성경 속 십계명도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이나 밭, 그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와 같이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며 타인의 소유를 모방하려는 것을 경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공감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 또한 바로 이 모방이다. 인간사의 다양한 갈등 사례를 들어 그 심리의 배후에 있는 모방의 메커니즘과 거기서 유발되는 잘못된 경쟁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모방을 향한 경쟁이 심각해지면 상대에 대한 극심한 증오나 비난과 같은 감정이 생겨나고, 이것이 애인이나 가족, 친구와 같은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기도 한다.
장미셸 우구를리앙 지음/ 김진식 옮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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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 자신일 수 있게 하고, 인간을 서로 닮은 존재로 만드는 것, 또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 지지와 안정을 추구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서로를 끊임없이 모방하기 때문이라는 게 우구를리앙의 결론이다. 흔히 연인들 사이에 생기는 문제나 갈등도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이러한 인간의 욕망 메커니즘의 결과라고 이해하면 한결 받아들이기 쉽다.
잘못된 말 한마디, 제3자에 대한 부적절한 질투, 상상 속의 의심 같은 것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들면 깊고 친밀한 관계도 금이 가게 마련이다. 반대로 이런 모방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방향을 돌려놓으면 오히려 연인 간의 사랑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서로의 지속적인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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