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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청사진/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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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올리며 네 명이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은 보편적인 각도와 높이의 계단을 밟고
차근차근
벽돌을 소모하고 삽과 젓가락을 소모하고 함바집 할머니를 소모하고 간이 화장실과 병실 침대를 소모하고 짱돌을 무더기로 소모하고

본래 이곳에 있던, 집으로 구축된 집들이 소모되며
누군가 기쁘고
누군가 슬펐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을 올리며 세 명이 더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리자의 관리자의 관리자는
일곱이면 선방이라고 생각했다 일곱이란 숫자는 모나미 볼펜을 한번 안 떼고
그릴 수 있다


청사진처럼
벽돌을 짊어진 저 젊은이는
아직 젊다
젊어서


위험수당을 받으면서도, 일곱 안에 포함된 사람과 같은 솥의 밥을 퍼먹었으면서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절뚝대는 무릎마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회복의 반대편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저 젊은이는
차근차근
젊어서
아직까지 젊음이 소모되지 않아서, 그렇게 차근차근 교육으로 오래 축조돼 온 희망이, 기대가
견고한 척, 휘어지기 직전의 크레인처럼


바람이 불어도
휘청하지 않도록


[오후 한 詩]청사진/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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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시다. “건물을 올리며 네 명이 죽었”고 또 “세 명이 더 죽었다”라는 사실부터가 이미 충격적인데, 그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선방이라고 생각”한다는 데엔 그저 소름이 끼칠 뿐이다. 그런데 어디 이 시에 적힌 현장만 그러하겠는가. 저 아파트는, 저 상가는, 그리고 저 도로는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서야 우뚝한 것일까. ‘용산 참사’는 지금도 도처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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