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삼성래미안 1차 아파트 근처에 남아있는 '당산동 부군당' 모습(사진=영등포구)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서울 서남권에서 교통 요지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당산동'이다. 5호선, 9호선이 함께 지나가는 당산역뿐만 아니라 영등포로와 당산로가 각각 동서, 남북을 향해 뻗어있다. 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보니 여러 운수업체들이 모여있다. 당산동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겨냥한 대형마트 입점 이후 유통의 메카로 떠올랐다.
당산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인구유입이 활발한 아파트 단지촌 중 하나다. 하지만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여러 마을 사람이 '동제당(洞祭堂)'에서 당제를 지내는 '당산(堂山)'골이라는 이름의 작은마을이었다. 당산동 한가운데 '단산(單山)'이라 불리던 언덕이 하나 있었다. 이 언덕을 경계로 웃당산, 원당산, 벌당산이라는 세 고을이 있었는데 이들 자연촌락을 합쳐 '당산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웃당산에 수령 500여년이 된 은행나무가 있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자 제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당산역 동쪽 삼성래미안 1차 아파트 근처에 '당산동 부군당'이 남아있어 과거 당산의 유래를 짐작케 해준다. 부군당 비문에는 1450년에 건립된 것으로 나와 있어 조선시대 전기부터 마을의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당산동 유래와 관련해 해당화가 많다는 의미에서 '당산(棠山)'으로 불렸다는 관측도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읍지를 모아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이 지역은 해당화가 많아서 당산마을로 불렸다. "양화진변 산 앞에 한강가에는 백사(白沙)가 날리는데, 해당화가 무성히 피어있다"는 내용 때문이다.
마을 신령을 모신 당산이 교통량이 많은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다. 1912년 당산동부터 문래동 일대에 피혁, 방적, 기계, 맥주 등 각종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시흥군에서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인구도 늘어났다. 1937년 중일전쟁 이루 당산동 일대는 보급기지로 활용됐다. 한강 수로를 통해 군수물자를 중국 전선으로 내보내는 기지였다.
지금 뜨는 뉴스
일제강점기 시절 형성된 군용기지 이미지는 해방 이후까지 지속됐다. 1948년 10월 대한민국 육군 포병대대가 최초로 당산에서 창설됐다. 문래근린공원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 전에 근무했다는 육군 6관구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군대 주둔지 느낌이 강했던 당산동 일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였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여의도 일대 아파트 재건축이 이어지면서 당산동 쪽으로 이주수요도 늘어났다.
유통의 메카로 평가받는 당산동은 각종 몰(Mall)이 몰려있다는 의미에서 '몰세권'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산동은 주변 문래동, 양평동과 함께 젊은 신혼부부과 많이 입주하면서 전셋값이 크게 오르는 지역 중 하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