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미국 제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1월 8일, 미국 제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 참석해 14개 평화원칙을 발표했다. 그해 11월,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오늘날 국제연합(UN)의 전신인 국제연맹(LN)이 만들어지면서 이 평화원칙은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 사상의 탄생과 연결됐다.
바로 '민족자결주의(National Self-determination)'다. 민족자결주의는 식민지 치하에 놓인 피지배민족에게 자유롭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自決權)을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은 이 민족자결주의를 골자로 당시 외교문제 현안이었던 약소민족들의 독립, 비밀외교 타파 등을 담고 있었다.
비록 당대에는 1차 세계대전 패전국에만 적용된 열강의 논리였다고는 해도, 이 민족자결주의는 지난 100년간 전 세계 약소민족, 약소국가들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장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됐고, 뒤이은 중국의 5.4운동, 인도에서 벌어진 비폭력 무저항 운동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독립운동의 기반이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에도 영향을 줬고, 현재는 '국제연합헌장', '제네바협정' 등에 포함돼 국제법상의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일단 세워지면서 과거 제국주의 침략국들의 역사적 시각을 바로잡거나 과거사 청산 문제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 국가에 대한 침략과 학살에 대해서는 서로 함구하던 유럽 국가들도 점차 진실규명과 배상문제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1905년, 탄자니아 주민 학살에 대한 독일정부의 보상문제나 프랑스의 알제리 독립전쟁 학살에 대한 과거사 청산, 영국의 케냐 무력진압에 대한 보상문제 등이 최근 거론되면서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 2018년 첫 수요집회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한일합의의 폐기 요구와 일본의 공식사죄, 배상 등을 촉구했다. 대사관 앞 소녀상 모습.
그러나 평화원칙이 만들어진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제국주의 국가가 있다. 바로 바다 건너 일본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등에서 저지른 학살과 수탈은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난징대학살 등 중국과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벌인 대규모 학살과 조선인, 중국인 등에 대한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와 무관했던 일이라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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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위안부 문제의 경우, 지난달 27일 위안부 TF의 조사결과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타결된 한일 위안부합의와 관련해 정작 생존 피해자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정부 입장에서 타결된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일본은 재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합의 이행만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와 전쟁범죄 문제에 있어 최대한 자국 정부의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 당시에도 일본 정부 위주가 아니라 민간이나 지역 사령관들이 주축이 되어 한 것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최대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해 10월,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집요하게 방해해 등재를 보류시켰으며, 이보다 앞서 강제징용의 현장이던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탄광, 일명 '군함도'를 메이지유신 산업혁명 유산이라고 포장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켰다. 강제징용 등 전쟁범죄 내용을 빼기 위해 갖가지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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