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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년인터뷰: 김지형 전 대법관] "법관이 직장인처럼 되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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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년인터뷰: 김지형 전 대법관] "법관이 직장인처럼 되선 안돼" 김지형 전 대법관_인터뷰. 2017.12.27./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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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금보령 기자] 2011년 11월에 퇴임한 김지형 전 대법관은 전직 고위 법관 가운데에서는 드물게 활발한 공익활동을 벌여왔다. 2013년부터 2년 동안 진행한 ‘삼성전자 백혈병 조정위원회’ 활동과 2014년 구의역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활동, 지난 해 7월부터 시작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위원회’ 활동이 대표적이다.

퇴임 후 공익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대법관은 여러 명 있지만 김 전 대법관처럼 활발하면서도 의미있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는 전수안 전 대법관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해 12월27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고위 법관에 대해 으레 갖게 되는 선입견과는 달리 ‘아재개그’까지 선보인 김 전 대법관의 다소 엉뚱한 모습으로 인해 종종 웃음보가 터지는 등 유쾌하게 진행됐다. (대담=장용진 법조팀장, 정리=금보령 기자)

문) 대법관에서 퇴임하면 격무에서 벗어나 홀가분해 한다고 하던데, 퇴임 이후 더 바쁘게 지내신 것 같다


답) 퇴임 후에도 변호사 업무 외에도 이런저런 여러 일을 해 오고 있는 셈이어서 제법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대법관으로 지낼 때보다 많이 한가한 편이다(웃음)


현직 법관시절과는 다른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깨달음을 얻고 있다. 법원이 잘 하려고 애쓰고 있고 나 역시 현직시절 많이 노력했지만 법원 밖에 나와 보니 생각보다 우호적인 것 같지 않다. 그런 시각을 느낄 때마다 과거의 나 자신을 뒤돌아 보곤 한다. 법원과 법관이 신뢰회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후임 대법원장으로 거론이 됐다. 기대를 하시는 분도 많았는데, 막상 당사자는 고사를 하신 것으로 안다.


답) 나처럼 대형로펌에 들어온 사람이 또다시 공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라고 마음 먹은 것도 있었는데, 그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방송 관계자들이 쓰는 말처럼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어디에도 나를 가두지 않고 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공직에 대한 생각은 아예 접고 있었기 때문에 매번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이해를 구하곤 했다.


문)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 위원회 위원장’도 공직이라면 공직 아닌가? 주변에서는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다.


답) (처음 위원장을 맡아 달라 연락이 왔을 때) 솔직히 망설였다. 사실 그 전에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조정위원회’를 한 것 때문에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다.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면 “그 문제도 나서서 조정하려 했던 사람이니 이 문제도 좀 맡아서 해 보라”라는 말도 들렸다.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또 하게 된 셈이다.(웃음)


어떤 방향으로 결정이 나든 욕을 먹을 수 밖에 없었기에 걱정을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좋은 기회라고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때마침 “우리 사회의 개혁과 발전에 법률가들이 제대로 기연한 바가 있느냐”고 질책하며 “나중에 실패하더라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


문)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결론을 내렸다는 평가다.


답) 양보와 타협이 만들어낸 결과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인류 역사에서 갈등 없는 발전이란 없었다’고 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의 말처럼, 사회가 발전하려면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것을 관리하고 조율·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의 당사자들에게는 각각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핵심적 가치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버리기보다는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양쪽의 입장과 가치를 일부씩 절충하는 제3의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다행히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절차에서는 양측의 입장을 적절히 담아낼 수 있는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었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숙의과정이라는 합리적 논의 절차에 따라 상식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을 찾았기에 가능했다.


문)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 조정위원회 활동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원전공론화 위원회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답) 통상 중재든 재판이든 당사자는 두 쪽 인데,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에서는 피해자 쪽이 두 그룹이다 보니 의견차가 있었고, 그 만큼 힘든 면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조정위 활동 이전에 진행된 6년간의 논의가 ‘마주보고 대화하지만 상대방 이야기가 잘 안들리는 형태’로 지속됐다는 점이었다.


조정위는 처음에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했다. 많이 들어주려하다 보니 당사자들도 마음을 열었다. 처음엔 2~3달이면 되겠거니 했지만 그런 식이다 보니 2년이 넘게 소요됐다. 아쉬운 점은 권고안까지 냈지만 완전히 타결되지 않은 점이다.
그나마 합의된 부분이 있어 일부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하나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래도 작은 성과라도 남겼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 현직 대법관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노동이나 인권, 소수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소수의견을 많이 낸 5명의 대법관을 지칭하는 것인데, 막상 당사자들은 부담스러워 했다던데?


답) 글쎄... 독수리 ‘오남매’인데 ‘오형제’라고 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원작 만화도 사실은 ‘오형제’가 아니라 ‘오남매’다.


법령해석에서 12명의 대법관들의 의견이 7대5로 갈린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많이 싸우기도 했다. 서로 캐릭터가 다르고 글이 아니라 말로 하다보니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논쟁 속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풍부한 논거를 담으려 했고, 판결문 초안부터 최종 서명까지 최소 열 번은 넘게 회람을 하며 작은 표현 하나에도 고민했다.


최고법원의 판단의 대상이 된 중요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치열하면서도 건강한 논쟁이 이뤄졌다. 최고법원이 선언하는 법적 정의에는 다양한 가치가 녹아들어야 한다.
다수의견이 정의이고 소수의견은 그렇지 않다거나 혹은 그 반대라고 볼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고 사회가 어느 논거에 더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문) 상고심 개편 등 사법부 개혁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오셨을 것 같은데...


답) 대법원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한해 4만건 가까운 사건을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것은 낭비이며 후진적인 모습이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제 기능을 하려면 어떤 사건을 상고심에서 다룰 것인지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상고허가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1·2심의 변화도 필요하다. 지금 같은 식이라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예컨대 1심 판사들이 사건이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시간에 쫓겨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은 고등법원 가서 말씀하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고등법원 가면 ‘1심에서 그만큼 했는데 뭘 또 하냐’고 한다. 그러면 당사자들은 ‘최고법원은 억울한 걸 풀어주겠거니’ 하며 대법원에 오는데 대법원은 또 사건이 너무 많아 우수수 털어낸다. 이렇게 되면 불신의 강도만 점점 높아지게 된다.


1심에서 사실심리는 최대한 충실히 하고 2심에서 법률적인 쟁점을 살펴야 한다. 대법원은 그 중에서 법률의 통일적 해석이나 판례의 변경 등 정말 중요한 사건만 처리할 수 있도록 바뀔 필요가 있다.


문) 배심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으로 안다.


참여정부 시절, 사법개혁위원회 등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다. 현재의 국민참여재판제도는 매우 제한적이다. 대법관 재임 중 미국 뉴욕연방지방법원을 방문해 법원장으로부터 배심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시민이 배심원으로 사실인정의 권한을 전적으로 행사한다. 겉으로 보기에 비용이나 판단 오류 가능성 등 여러 단점이 있다고 하나 재판과정에 직접 참여해 경험하면서 사법에 대한 신뢰를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이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큰 장점이다. 배심제는 재판권의 민주적 행사라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가장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문) 사법부 현안에 대해 견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법관 블랙리스트’사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답) 보도되는 것 외에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법관의 독립, 그 중에서도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법관의 독립을 위협하는 외부요인은 많이 줄었지만 내부의 위협은 오히려 부각되는 듯하다. 법원이 마치 관료조직처럼 변해가는 것, 법관이 직장인처럼 길들여지는 것은 곤란하다. 과거에 비해 법관들이 자꾸 위축되는 듯한 느낌도 있고 그러다보니 그냥 직장인으로 얼마나 잘 지낼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저널리즘을 갖고 험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기자와 같은 언론인들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 끝으로 새해를 맞아 계획이 있다면?


지난해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에 참여하면서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법연구소 해밀 활동을 이어가는 등 원래의 일상에 돌아갈 계획이다.


새해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어려운 국제환경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정치ㆍ사회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힘과 지혜를 모아 분열과 대립으로 생긴 상처를 치유하여 통합과 상생의 길을 찾아 나가는 행복한 경험을 우리 사회에 거듭거듭 안겨주었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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