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기준 확립 이후 업계 확산
소모적 노사 갈등 벗어나는 차원
통상임금 소급분 지급에도 합의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국내 정유업계 4위인 현대오일뱅크 노사가 SK이노베이션에 이어 임금인상 원칙을 만들었다. 매년 1%씩 임금을 올리되 동종업계 인상률에 따라 확대하기로 했다. 해마다 벌어지는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다. SK이노베이션이 국내 대기업 최초로 임금인상 기준을 세운 이후 이같은 분위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 노사는 21일 조인식을 열고 '2017년 임금협상안'을 최종 확정짓는다. 노사는 앞서 지난 14일 임협안을 잠정 합의했고 18일 대의원 찬반투표를 통해 58%의 찬성률(31명 중 18명 찬성)로 가결했다.
노사 합의에 따라 매년 임금 인상률은 1%를 기본으로 하되 동종업계 인상률을 반영해 최종 결정된다. 임금인상 공식을 만든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최근 '임금 인상률=물가 상승률'이라는 공식을 세우면서 현대오일뱅크 노사도 원칙 마련에 고심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업계에선 통상 업계 '맏형'인 SK이노베이션의 협상안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임금 협상은 매년 노사 각각 제시한 임금 인상률을 토대로 타협점을 찾으며 줄다리기하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노조는 최대한 높게, 사측은 최대한 낮게 제시하는 등 시작부터 갈등이 생겼고 관행처럼 협상 기간이 길어지는 일이 많았다. 이번 결정은 이같은 소모적인 다툼을 없애자는 의미다.
노사는 총 4년치에 대한 통상임금 소급분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정기상여금 600%를 통상임금에 반영하고 재산정한 금액과의 차액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통상임금 산정기준시간은 노조가 사측에 소급분 지급을 요구한 2015년 11월26일을 기준으로 과거 3년과 이후 1년은 월 243시간, 올 1월1일부터는 180시간으로 정했다.
다만 일부 조합원은 타결 격려금(기본급 대비 150%), 1000만 인시 '무재해' 포상금 등이 동종업계 대비 적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어려울 때마다 임금동결로 고통을 분담했고 현재 유례없는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다. 한 조합원은 노조 게시판을 통해 "창사 이래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 1%+α는 앞뒤가 맞지 않는 임금 인상"이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올 상반기 584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1.3% 늘어난 규모로, 국내 정유 4사 중에서도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이같은 실적 호조는 최근 몇 년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2014년 2262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5년엔 6000억원을 넘겼고, 지난해엔 96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거둬들였다.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평균 급여는 정유업계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해 평균 급여는 전년 대비 2.2% 올랐다. SK이노베이션이 33%,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13% 가량 오른 것과 대조된다. 업계 관계자는 "성과급 대신 고정급여와 실적에 따른 변동급여를 지급하는 방식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임단협이 지지부진하고 순환 휴직 등 구조조정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 한 상황에서 일감 부족에 따른 대응으로 순환휴직까지 시행되면서 노사 갈등이 커지고 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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