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미·중·러 공동압박 가할 때 해법 찾아질 것"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방한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73) 전 독일 총리는 12일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외교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상대적인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서전 출간을 계기로 최근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강대국간 세력 경쟁이 벌어지는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외교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외교에 있어 상대적인 독립성을 획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나"라고 운을 뗐다.
그는 "외교 분야의 상대적 독립성은 여러분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이 해결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라면서 "한국의 내부 정치와 우방국 관계에 대해 전 독일 총리로서 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해서는 "북한은 명백하게 범죄정권이다. 자기 민족을 희생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실험하는 상황"이라면서 "국제사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드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이 돼야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 3대 강대국이 공조해서 북한에 대해서 공동 압박을 가할 때만이 해법이 찾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금 북한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남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단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북한에) 대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북핵에 대응한 전술핵 재배치론에 대해선 "독일은 핵 포기를 선언했고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정치문화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한국도 나름의 정치문화가 있으니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권고할 만한 일이라곤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답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전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은 소감도 전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역사적 사실은 현 세대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일본이 아직 사과할 용기를 내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전날 관람한 것에 대해서는 "영화 속 젊은이들의 투쟁과 용기가 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현재 국방부가 추진하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조사에 대해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발포가 규명되는 것이 유가족들에게 중요하며, 유가족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슈뢰더는 1998년 제7대 독일 연방총리로 선출돼 2005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는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이른바 ‘어젠다 2010’이라는 광범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의 개혁정책은 독일 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산업국가로서 입지를 다지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2005년 11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모든 정치 관련 직책을 사임한 슈뢰더는 하노버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면서 '얼굴을 보여라!(Gesicht Zeigen!)'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혐오 현상과 반유대인주의에 대항하는 단체의 후원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명예직을 수행하고 있다. 2006년부터 유럽과 러시아가 합작 경영하는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주식회사의 감독이사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문명국가로의 귀환'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자서전은 자기비판이 담긴 투쟁적 정치 인생사를 담고 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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