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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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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운봉 ~ 주천)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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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읍을 지나 고원을 걸으려니 춘향전의 사랑가가 들려온다.
그동안 운봉고원과의 사랑 나눔에 남아 있는 환청인지도 모르겠다.

고원은 일종의 환각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장소처럼 다가왔었다.
다소 들뜬 마음, 뭔가에 안겨 있는 듯하나 흥분되는,
그렇지만 포근함이 밀려와 그 아늑함에 주체를 할 수 없는
설명하기 힘든 마력이 느껴지는 곳이다.


처음 고원을 오를 때에는 그곳에 도달하면 어지러울 줄 알았다.
나를 배척할 것 같았고 메마른 바람만 휑하니 대지를 휩쓸고 갈 줄 알았다.

그곳에는 사람 같은 사람이 살지 않고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들이 간혹 말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바람만 남기고 지나갈 줄 알았다.


나와는 다른 억양과 언어로 때로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고
내가 말을 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일 년 내내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만 불어오는 동토의 땅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무지였다.
위로받아야 할 대상인 고원이 위로를 쏟아 주었다.


운봉고원은 내가 고원에 당도하자마자 나를 착 감싸 안고
그동안 세상에서 혼쭐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마치 무릉도원처럼 나의 근심 걱정을 씻어 주었는가 하면
내가 살았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오늘은 그 고원길을 마지막 걷는 날이다.


행정마을을 지나 가장마을로 가는 람천 방천가에는
억새가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뜨지 못하게 한다.
운봉고원이 베풀어 주는 마지막 환대로 느껴진다.


사선으로 태양이 비춰 아직 산자락에는 산 그림자로 메워져 있고
투과되는 태양을 온 몸으로 받는 억새는 그 검은 그림자를 배경으로
세상에 그 어떤 명품과도 비교되지 않은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 방천을 따라가면 무릉도원이 대문을 활짝 열고 맞이해 줄 것만 같다.
억새를 엮어 바닥에 깔아 놓고 지르밟고 오라고 할 것만 같았다.
억새로 꽃다발을 만들어 연도에서 서서 흔들어 줄 것 만 같았다.


하지만 이 방천은 노치마을 어귀에서 억새와의 이별을 해야 했다.
람천이 그의 근원인 덕산저수지에서 시작되기에
억새와의 동행도 여기서 아쉬운 이별이 되었다.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수정봉아래 노치마을은 이 땅의 물줄기를 가르는 장소다.
동쪽과 서쪽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이 동네를 가로질러 수정봉으로 뻗어서 만들어 낸 이치다.


마을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이 되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이 된다.
운명을 바꾸는 대 역사가 이 작은 동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지리적 관점에서 이 작은 동네 노치마을이 중심추가 되어
이 땅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노치마을을 빠져나오는 외길은 왜 그리 가늘게 굽어 있는지
새끼로 기차를 만들어 칙칙폭폭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길 위에 그려졌다.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나의 새끼 기차는 회덕마을로 향한다.
노부부의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바깥어른은 논에서 짚단을 묶고 할머니는 논두렁에서 깻단을 막대기로 털고 계셨다.
굽어진 허리가 내가 타고 온 새끼 기차와 너무 닮았다.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동네 어귀에는 동네 식구들이 음식 장만을 하느라 떠들썩했다.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굿하러 가기 위해 음식을 장만한단다.
할머니 말씀을 잘 새겨 들어보니 가을걷이가 끝나고
동네 식구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여행을 가는 모양이다.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구룡폭포를 오리정도 남기고 나는 돌다리를 건너 숲으로 올랐다.
소나무 군락지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못되어도 이십 리는 족히 되는 거리에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된 소나무가 빼곡하다.


얼마나 숲이 짙어 있던지 숲속에는 햇빛조차 파고 들기가 힘들어 보였다.
간혹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드는 곳은 풍금을 숲속에 깔아 놓은 듯
검고 하얀 햇빛 자국이 숲속에 건반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숲속의 작은 음악대 ~~~~”
소나무들이 숲속의 음악대가 되어 풍금을 쳐 줄 것 같았다.


숲 사이로 언뜻 보이는 고봉의 줄기들, 지리산 서북 능선이다.
저 능선이 북으로 올라가면 백두대간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땅의 허리가 저기 저렇게 위용을 갖춰 이 산하를 지키고 서 있다.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16] 운봉고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드디어 내 발 아래 십 리 정도 떨어져 보이는 곳에 황금색이 빛난다.
주천평야다.
그 옆에 주천면 소재지가 작은 동네를 이루고 있다.
주천평야가 얼마나 평화롭게 펼쳐져 있던지
작은 뜀박질만 하여도 살포시 저 너른 들판에 안길 것 같았다.


이제 운봉고원과의 작별의 시간이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때론 이상과 꿈은 허황되다 할 수 있으나
이것이 없는 세상은 소금 없는 바다와 같고 가슴 없는 사람과 같다.


이상이 있기에 꿈을 꿀 수 있고 오늘 뿐 아니라 내일을 갈구 하는 것이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참아 낼 수 있는 것은 이상이 내 심장을 고동치기 때문이다.


몇 발자국만 더 떼면 저 발아래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살아갈 곳이다.
바로 내가 꿈꾸는 그 장소다.


이상이 있기에 현실이 이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상이었고 꿈이었던 운봉고원은
나를 주저 없이 저 현실의 땅으로 내려가라고 등을 두들겨 주는 것이다.


그 담력으로 그 가슴으로 현실의 장소로 거리낌 없이 내려가는 것이다.


자, 이상의 나래를 펼치고 운봉고원을 박차고 일어나
현실의 땅 주천으로 날아가는 거야!
운봉고원이 내게 말해 준 그 이상을 펼치는 거야!


누군가 날 에워싸고 날 향해 달려와도
운봉고원이 선물로 준 그 가슴으로 현실을 보듬는 거야!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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