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김진표 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20일 증세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증세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전날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100대 국정과제'의 재원 조달 방안에 증세가 빠졌지만, 김 전 위원장이 '증세 불씨'를 살린 모양새다. 정부 내에서도 증세를 어떤 방식으로 공론화 해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당시 21% 수준이던 조세부담률이 현재 18% 수준이라며 "나라가 제 기능을 하고 경제ㆍ사회에서 부족한 부분을 잡으려면 단계적으로 조세 부담을 올리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순위로는 고액자산가의 소득세와 법인세를 꼽았다.
정부는 전날 100대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재정 계획에서 증세를 제외했다.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실현에 투입될 재정 178조원을 세입확충(82조6000억원)ㆍ세출절감(95조4000억원)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의 세입 부문 중 어디에서도 증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입확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연 12조1000억원 규모의 세수증가분이다. 5년간 60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밖에 비과세 감면과 정비, 탈루세금 강화, 과징금과 연체ㆍ불납액 해소 등을 통해 나머지 31조9000억원을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후보시절 내세웠던 재원조달 계획에서는 증세 등 세입개혁을 통해 연간 6조3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항목이 포함돼 있었지만, 정작 국정기획위를 거치고 나니 증세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정권 초기 국정기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때는 종합부동산세, 박근혜 정부에서는 담뱃세가 정권에 대한 민심 유리를 촉발시키며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최근에는 경유세 인상 논란이 '제2의 담뱃세'로 불릴 만큼 커지기도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세법개정안에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정부가 향후 재정지출을 대폭 늘릴 것을 감안하면 증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을 기존 3.5%에서 7%로 두 배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178조원 공약에 포함되지 않은 재정 지출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최저임금의 16.4%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경영난을 겪게 되자, 인상분 3조원을 재정에서 직접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공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공약을 실천한 데 따른 부수적 비용이다.
증세에 대해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오래 가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출 구조조정이나 조세행정 강화는 지난 정부 때부터 진행해온 것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다고 해도 큰 효과를 보기 힘들고 경기에 부담이 올 수 있다"며 "공약 추진을 위해서는 결국 증세가 필요한데, 증세 방안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계속 이런 식으로 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도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증세를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5개년 100대 과제를 보다 보니 무거운 짐이 주어졌다 느꼈다"며 "재정당국에서 내놓은 재원 조달방안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국민들에게 경제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좀 더 나은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형편이 되는 쪽에서 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고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며 "해내지도 못하는 지하경제 양성화, 이런 이야기 말고 소득세율 조정 등 증세 문제를 갖고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국민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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