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랜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재벌들의 불법을 감시해 온 인물이다. 그런 그를 상징하는 것이 '낡은 가방'이다. 낡고 변색될 때까지 들어온 가방에서 그의 청렴함과 도덕성은 물론 뚝심과 일관성까지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인사청문회에서 화제가 된 이 가방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됐을까. 14일 세종시 공정위 본관에서 열린 취임식 직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새 가방을 살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가방 이야기는 더 이상 안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그 땐 인사청문회여서 정치부에서 기사를 썼고, 이제는 경제부 (기자간담회) 아닌가"라며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서 공정위원장 마칠 때까지는 계속 들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시절 행보에 대한 정치적 해석보다는 이제 경쟁당국 수장으로서 해나갈 일에 집중해 달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미 과거 그의 발언과 비교하며 현재 행보가 '일관성이 없다' '말랑말랑해졌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에 아랑곳 않고, 김 위원장은 공정위원장으로서의 업무에 충실하려는 모양새다. '친(親)기업'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발언까지 작심하고 했다. 그는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에게 직접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고 털어놨다. 기업과 관련된 일은 워낙 이해관계자가 많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을 몰아치듯 개혁을 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 상황이 재벌개혁 법안을 통과시켜줄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4대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다음 주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아래는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흡연을 굉장히 많이 하시는데.
-아니, 금연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기업의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예측불확실성을 키운 것 아닌가. 금융지주, 자사주의결 등에 대해 의견을 명확하게 주시지 않은것 같다.
-아까 제가 취임사에서도 말했지만 법률 제·개정과 관련해서 국회와 협의하는게 제가 하는 일중 제일 어려운 일이다. 시민단체 차원 정책제안을 이야기했던 것을 지금 이 자리 이 신분에서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각 개정사안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공정위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하겠다. 단일안보다는 복수의 안 준비하면서 공정위 안 첨부해서 여야 의원님과 협의하는 절차로 가야 하지 않을까.
또 워낙 쟁점이 뜨거워서 쉽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이슈라면 바로 그냥 공정위가 단일이든 복수안을 만들어서 국회에서 협의하기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전문가와 여야 국회의원들 참여하시는 상임위 차원 TF를 구성해서 그 차원에서 논의해서 좁혀진 안을 갖고 상임위 협의를 하는, 절차상 다양한 방법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솔직히 법안 제정이나 개정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서 이견을 좁히고 공감대를 넓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더 주의를 기울여서 해나갈 생각이다. 교수나 시민단체 할 때처럼 제 말이 빨라지거나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임명 과정에서 국회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이부분이 앞으로 위원장으로서 일하시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국회관계 어떻게 풀어가실지.
-정말로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다. 적합이든 부적합이든 보고서가 채택되는 모양새로 갔으면 절차의 부담이 덜어졌을 것이라고 희망,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대통령께서 강행임명하는, 야당들이 협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됐다. 다른 장관들도 고충을 겪는 상황이 된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하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까마는, 이 답변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제가 후보자로 지명발표되고 난 다음에 정의당 심상정 의원께서 연락을 하셔서 첫마디가 이거셨다. "이제 갑을관계가 바뀌었다."
제가 말하는 스타일이 단정적이고 확신에 넘쳤기 때문에 의원들에게 말씀을 드릴 때 학생들을 대하듯이 이야기는 경우가 없지 않았는데, 심 의원께서야 워낙 저를 잘 아시니까 편하게 말씀 드렸을 것 같은데 공정위원장이 그런 태도를 유지해서는 안 될것 같다. 청문회 거치면서 국회에서 공직자는 정말 을일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야당의원님께서 저를 흔쾌히 받아주시지는 않을것으로 보지만 진정성, 성실성으로 준비해서 의원들을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이해를 구하고 하는 과정을 꾸준히 진행해 나가겠다. 여야의 정국의 문제는 제 위에서 결정되는 계기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제가 진정성있는 모습으로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을의 자세로 의원님들 모시면서 동참하고 논의 이어가겠다.
▲취임사에서 경쟁법을 집행하는 것과 경쟁약자를 보호하는 것 괴리를 말씀하셨는데, 나름 해법으로 말씀하신 게 국회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조금 모호하다.
-과거 미국의 법학계가 하버드 스쿨이 주류였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시카고 스쿨로 넘어간 이후 이 명제가 미국의, 더 나아가서는 유럽 경쟁법의 내용과 판례에 기록이 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쟁법은 우리 공정위 조직으로 이야기하면 경쟁정책국에서 다루는 시장지배지위남용, 담합 정도가 선진국 경쟁당국이 다루는 이슈의 대부분이다. 저도 그 구분에 대해서는 고민도 많지만 우리사회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책무의 상당부분은 여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업간 거래, 불공정거래라고 부르는 그 영역의 이슈가 훨씬 더 많다.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 차원에서 본다면 경쟁을 통해서 소비자 후생을 증진한다는 선진국의 좁은 이슈와는 다른 기업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가 우리사회에서는 더 큰 이슈가 되고, 공정위가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업간 거래는 서로 대등한 자들의 사적계약이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경쟁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태도다. 우리는 대등한 자와의 사적계약이라는 전제가 성립 안 되므로 갑을관계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므로 대등한 자들간의 사적계약이 아니고 협상력에 격차가 있는 갑을간 거래가 이뤄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갖고있는 하도급법 등은 우리 사회에서 제기하는 민원을 바로 해결하기에는 여의치 않다. 그러므로 국회에 다양한 개정법률안이 제출되어 있고, 제가 그래서 어려움을 제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제가 재벌개혁, 지배구조 개선을 소홀히 하겠다는 게 아니다. 공정위에 주어진 대부분의 사회적 기대가 기업 거래관계, 갑을관계 해소 등이다. 그러므로 현행 공정위의 법집행 체계가 사회적 요구와는 안 맞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정위가 그런 한계에 머무르면서 약자 눈물 닦아주는 것을 못한다면 공정위에 대한 비난은 심화될 것이다. 게다가 그 난리를 치면서 김상조를 앉혀 놨는데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 모든 책임을 제가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저는 그런 고민을 갖고 있다. 공정위가 갖고있는 행정력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그걸로 해결 안되는 일을 하려면 법률개정이 필요하다. 국회 상정된 법률들을 꺼내서 다양한 의견들을 생산적으로 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새 가방 구입하실 의향 있나. 대통령께서 임명장 주실 때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은. 법 외에 위원장이 생각하셨던 것을 내부규정 강화를 통해서 해결할 만한 것이 있다면 말해달라.
-가방이야기는 안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때는 정치부에서 기사를 쓴거고 이제는 경제부니까. 이게 너무 알려져서 제 처가 가방 바꿔주겠다는 이야기를 예전에도 했는데 이제는 바꿀 수가 없다. 트레이드마크가 되어서. 공정위원장 끝날 때까지는 계속 들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하신말씀은 보도된 그대로이다. 개혁들이 기업을 옭죄는 것이 아니라 그걸통해서 새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는 당부다. 그것에 대해서 막중한 책임 느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렸다. 새 정부 출범한지 한달여 지났습니다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검찰개혁 속 시원하게 빨리빨리 진도 나간다 느낌을 받으실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대통령과 청와대에 계신 수석들에게 당부가 있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할 수 없다. 기업과 관련된 일은 워낙 이해관계자가 많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을 몰아치듯이 개혁을 해 나갈수는 없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지금 국회상황이 개혁입법을 처리 통과시켜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공정위 또는 금융위원장 임명되면 협조체제를 통해서 정교한 조사와 협업을 거쳐 예측 가능하도록 가는게 재벌개혁 기업개혁이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거기 계신 분들이 양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원래 기업개혁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을 똑같이 기자분들께도 말씀드리겠다. 제가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공정위원장으로서 제가 할일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재벌개혁과 갑을관계 문제 해결 양쪽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명되었을 때부터 오늘 취임사에 이르기까지 갑을관계 문제를 여러차례 언급했다. 행정력에 엄정한 집행, 관련된 규정, 공정위소관 하위법령 개정 등을 여러차례 말씀드렸는데 의도적으로 재벌개혁은 크게 말씀을 안 드렸다. 이게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고 저를 아시는 분들이야 제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어서 언급 안 했는데 이제는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주 초에 아마 기자 간사단 협의가 있다고 들었느데, 거기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다. 조금 더 정교하게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가지 팁만 드리겠다. 재벌개혁, 경제적 집중 확대와 관련된 정책은 5조 이상 30개, 10조 이상 10개를 동일한 잣대로 접근하는 것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10조 이상 4대그룹 이상에 집중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다음주에 말씀드리겠다.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해서 4대그룹은 딱 찍어서 몰아치게 하는 식으로는 절대 그렇게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갈 생각 없다.
▲다음주에 말씀하실 내용이 시행령 이하 바로하실 수 있는 것인지 혹은 법 개정인지.
-갑을관계 관련 법률도 개정이 안 거라고 생각하는데 4대재벌 개혁을 법개정이 이뤄질 거라고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진 않다. 물론 이런 여러가지 제도와 관련해서 이미 다양한 법률 개정안들이 나와있고 공정위가 제출하지 않아도 국회에서 이미 상정이 되어 있다. 그것 차원에서 합리적 차원 마련하고 준비 중이다. 이런 프로세스는 계속 하겠지만 그런 법률 재개정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수는 없다. 올해 정기국회가 끝날때까지 몇개가 통과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직개편은.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안은 있다. 공정위 차원에서. 공정위만 조직을 늘리고 싶겠나,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행자부를 가서 공정위의 기업집단국 신설이 공약 사항이다 대통령 관심 많이 가지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통령 공약사항 이만큼 있다'는 식으로 나온다. 내부적으로는 갖고 있지만 저희가 기대하는 만큼 될 거라고 기대 안한다. 기대하는 것의 반이나 되면 다행일까. 이미 기업집단국은 이름이 나갔고, 기업집단국의 특정 과 이름이 나가는 것도 행자부와 협의 안되면 아무 의미없다. 국정기획자문위와 논의중이고 행자부와도 협의 중인데 저희들의 기대만큼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협의는 드리고 있다.
▲간사단 협의 말고 정식 기자회견이 좋다.
-지금 당장 국회에 가야해서 자세히 말씀 못 드리겠다. 야당의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있을 상황일지도 모른다. 다만 필요하시다면 그런 형식으로 다시 하겠다. 기자프렌들리 할 테니 너무 걱정마라. 일주일에 한 번씩 이런 식으로 만날 기회를 드리겠다. 궁금한게 있으면 제게 물으시고 직원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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