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제로'공약이 기초가 되고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도화선이 된 문재인정부의 일자리정책을 두고 재계가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업황·사정 고려없이 민간기업에 고용 강제할 수 있나
재계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에, 아니 경제를 그나마 지금 수준으로 지탱하는 데에 양질의 일자리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재계가 그 동안 학습과 경험을 통해 체득한 바로는 일자리창출은 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기업이 앞으로 외형과 내실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인력채용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의 대졸초임이 4000만원을 넘는 현실에서 대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하려면 업황과 실적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생산직도 마찬가지로 공장을 계속 돌리거나 공장을 더 지어야 할 필요성이 생길 때 직원을 채용한다. 반대로 업황이 어렵고 기업 사정이 나아지기 어려울 때에는 채용을 늘릴 수 없다. 또한 회사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때에는 인력을 줄여야 한다. 노조가 있는 회사는 인력감축이 쉽지 않고 파업이나 특근이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싶지만 대체근로나 파견근로가 현행법으로는 금지돼 있다.
-트럼프·아베는 돈 풀고 감세하는데…韓은 준조세걷겠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들고 나오고 비정규직이 일정수준을 넘는 기업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또 다른 준조세다. 기업으로선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아예 비정규직을 없애면 비정규직 자체가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에는 그 비용과 부담금을 내는 비용을 따져봐서 비용이 더 낮은 쪽을 선택할 수 있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의 경우처럼 고용 대신 부담금을 낸 기업들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아베의 경기부양정책의 핵심도 자국내 일자리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둘 모두 재정을 적극 투입하고 감세정책을 펴서 기업들에 일자리를 많이 늘리라면서 채찍보다는 당근을 많이 제시한다. 미국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 정규직을 일정 기준이되면 해고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논의는 경영계에서만 나오고 노사정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경제가 전자ㆍ자동차ㆍ중화학ㆍ항공물류 등 주력산업의 대표기업 3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8곳은 소요 재원과 필요성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곳은 해고기준 완화 등 노동 유연성을 전제로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것에 공감하지만 정규직 고용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밀어붙이기식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일자리 정책도 규제와 진흥의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용어와 통계부터 잘못됐다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용어와 통계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현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非)정규직이라는 말은 '정규직 아닌 일자리'를 통칭하는데 ▲한시적 근로자 또는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 용역, 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간접고용형태까지 포함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임시직 근로자(Temporary employment)만을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기준에 따른 비정규직 비중은 32.5%지만, OECD 기준에 따른 비중은 22.3%로 차이가 난다.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된 근로자들 대부분은 파견, 용역 등 아웃소싱 근로자들로서 이들을 비정규직에 포함시키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게 경영계의 판단이다. 경총은 "비정규직과 아웃소싱 활용은 최소한의 가격경쟁력과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의 자구책"이라며 "정규직 전환이 무리하게 추진되면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오히려 일자리 규모가 감소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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