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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고추장 맛만 나는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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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성 감독 '임금님의 사건수첩'

[이종길의 영화읽기]고추장 맛만 나는 비빔밥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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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를 잠행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왕 예종(이선균). 동행한 사관 윤이서(안재홍)가 계속 '전하'라고 하자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잊지 말거라. 우린 친구 사이라는 걸." 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귀엣말을 한다. "알았다. 이놈아." 예종은 얼굴빛을 바로잡고 윤이서를 꾸짖는다. "너 미친 거 아니야."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퓨전 사극이다. 코미디에 수사, 액션, 어드벤처, 무협 등을 뒤섞었다. 두 주인공의 특징을 모순된 설정 등으로 코믹하게 전하면서 복수 사건을 풀어간다. 사건들의 칼끝은 왕을 향해 있다. 그런데 어디서도 긴장을 찾을 수 없다. 예종은 위험이 스멀스멀 다가오데도 시종일관 태평하다. 공조하는 윤이서와의 갈등도 크지 않다. 범접할 수 없는 상관이다 보니 상대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형태가 지속된다. 윤이서는 과중한 업무에 피로를 토로하고 궁을 나갈 생각까지 한다. 저잣거리에서 차지게 하는 반말에는 이렇게 꾹꾹 눌러온 답답함이 응축됐다. 그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이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고추장 맛만 나는 비빔밥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컷

이 신은 왕이 잠행을 한다는 점에서도 복기할만하다. 대체로 이런 행위는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거나 민심의 목소리를 듣는데 무게가 실린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이런 요소들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수사와 코미디에만 집중한다. 예종이 사건의 단서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다. 괴이한 소문의 진원을 추적하다가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길함을 느낀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수사에 공을 들였다면 이 결을 끝까지 유지해 장르적 쾌감을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수사는 숲이 아닌 나무 한 그루에 불과하다. 극 초반 저잣거리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등을 과학적으로 검안하지만, 이후 어떤 수사도 배치하지 않았다. 잠항선의 실체를 파악하는 시퀀스에서 어드벤처로 옷을 갈아입고, 예종이 독살될 위기에 처한 뒤에는 액션으로 둔갑한다. 그래서 퓨전 사극을 내세우지만, 어떤 장르적 쾌감도 전하지 못한다. 잘 익은 밥에 각종 채소를 섞었지만, 고추장 맛만 나는 비빔밥 같다.


부실한 장르의 다변화는 두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예종은 사건의 실체를 직접 밝혀낼 만큼 기민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영민함이 사라져간다. 후반에는 아예 의식을 잃고 극에서 이탈하기까지 한다. 윤이서는 장원급제를 한 인재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파악할 만큼 명석하지 않다. 그나마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천부적인 기억력도 이를 사용할 만한 상황을 만나지 못해 매몰된다. 그는 역사의 편찬을 맡아 초고를 쓰는 사관인데, 예종의 정치에 관심도 없다. 왕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펀칭 머신 역할에 머물면서 맹목적인 충신으로만 그려진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고추장 맛만 나는 비빔밥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컷


이 영화는 서사의 부실한 완결성 등을 슬랩스틱 코미디로 만회하려고 한다. 왕이 평민의 말투를 사용하는 설정과 윤이서가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 유발되는 소소한 재미로 극 전체를 도배한다. 이 요소들은 저잣거리에서의 반말처럼 효과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개인기를 보여주는데 그친다. 배우들이 다른 작품에서 빚은 이미지를 다시 가공한 탓에 관객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선균은 영화 '성난 변호사(2015년)'ㆍ'끝까지 간다(2013년)'는 물론 드라마 '파스타(2010년)'ㆍ'골든타임(2012년)' 등에서 특유의 신경질적인 말투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안재홍은 푸근한 인상을 활용한 코미디 연기로 유명해졌다. 많은 이들이 그를 이름 대신 드라마 '응답하다 1988(2015년)' 속 정봉이라고 부를 정도다.


안재홍은 "'웃겨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문현성 감독은 그들의 특징들을 그대로 반영해 예종과 윤이서가 상호 보완할 여지마저 줄여버렸다. 다른 영화에서 사용한 슬랩스틱 장치까지 재현해 근래 국내 코미디영화가 보이는 한계를 다시 드러낸다. 이쯤 되면 고질병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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