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에 끼인 상황…"외교갈등 극복할 리더십 절실하다"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최근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경제 압박에 한국 경제가 희생양이 되고 있다. 더욱이 국내적으로는 정치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이어서 외부의 압박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임박했지만, 이후 조기대선을 치르게 되더라도 2개월이 걸린다. 만약 기각이 될 경우, 국내 정치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지고 경제에도 치명타를 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 정부가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반발해 잇따라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신정부 출범 이후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을 높이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양측 간의 직접적인 통상마찰을 피해 한국을 집중 타깃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에서 수입하는 상품과 현지 진출기업에 대한 각종 제재에 이어 한국행 여행상품 판매 중단을 구두로 지시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경우 중국 현지 유통시설에 대한 위생·안전점검, 소방점검, 시설조사 등과 함께 신용장 발급 조건이 강화됐다. 롯데면세점은 홈페이지 디도스(DDoS) 공격 등을 받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한국행 여행상품을 전면 중단시키기도 했다. 중국인 관광객 60~70%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일 "오바마 행정부 기간 도입한 최대 무역 협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동시에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극적으로 증가했다"며 "결과적으로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2배 이상 늘었으며, 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미국인들이 그 협정으로부터 기대한 결과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분명히 우리가 여러 무역 협정에 대한 접근법을 심각하게 다시 검토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한국산 인동에 8.43%의 반덤핑 관세 최종 판정을 내렸다. 지난 1월과 2월 한국산 화학제품인 가소제와 합성고무에도 예비관세를 부과해 최종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이렇다 할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탄핵 국면으로 외교라인이 제대로 작도하지 못하는데도, 이번 사태를 안이하게 본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19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국회 긴급현안질문 답변에서 중국의 보복 우려에 대해 "기본적으로 한중 관계가 고도화 돼있다. 쉽게 경제 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면서 "그런 우려의 소지는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미가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결정한지 11일 만의 발언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중국 정부 측에서 경제 제재를 취하겠다는 얘기도 없었고, 그런 걸 시사하는 발언도 없었다"며 "앞으로도 그런 게 있을지에 대해 꼭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달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면적인 경제 보복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중국이 사드와 별개로 가끔 비관세 장벽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걱정된다"고 언급했다.
한국 경제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부분적인 보복조치만으로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 수출 가운데 중국은 25.1%, 미국은 13.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사드보복이 구체화 된 지금도 정부는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지난 3일 오전 고위당정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지만 구체적 방안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뿐이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TF 회의에서 최근 외국인 관광 동향 및 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 "사드 배치 관련 중국측 동향과 우리 기업의 애로사항을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된 직접적 언급은 없으며 무역적자에 관한 객관적 수치를 제시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데도 불구,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갈등은 미국과 중국 간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간에 끼인 한국이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오히려 표적이 된 데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최순실 사태 이후 정상외교 공백 등이 장기화 되면서 국익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대통령이 양국 정상들과 만나 우리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설득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리더십 공백이 생기자 강국들의 노골적인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무엇보다 현재 탄핵정국이 빨리 끝나야 한다"면서 "외교와 통상에는 파트너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인정하는 리더가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하고, 그래야 현재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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